조선을 흔든 개혁의 바람 - 조광조 평전 |2021. 08.04

이처럼 종종 초기에 무려 다섯 차례의 역모 사건이 고변되었으며, 이에 연루되어 적지 않은 인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그 사건들이 정말 역모를 꾀했는가를 확증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사건의 주모자 또한 유생에서 종친, 정국공신들까지 그야말로 다양했다. 준종의 반정이 아직도 제대로 마무…

조선을 흔든 개혁의 바람 – 조광조 평전 |2021. 07.12

하지만 세상일과 동떨어진 선비로만 지내기엔, 그저 구도의 기쁨으로만 살아가기엔 그에게는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빈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냉소적인 웃음으로 채우며 살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 뜨거웠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것은 수기를 넘어선 치인治人, 자신이 배운 바를 세상에 적용해…

1510년 29세(4) |2021. 06.22

하지만 세상일과 동떨어진 선비로만 지내기엔, 그저 구도의 기쁨으로만 살아가기엔 그에게는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빈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냉소적인 웃음으로 채우며 살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 뜨거웠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것은 수기를 넘어선 치인治人, 자신이 배운 바를 세상에 적용해…

1510년 29세(3) |2021. 06.09

결국 그는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자신이 따르는 학문 또한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선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 학문의 가르침을 세상으로 여는 것이 배운 자의 몫이다. 그것이 도학道學의 존재 의미가 아닌가.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흐트러진 세상을 바로 …

1510년 29세(2) |2021. 05.21

그러므로 봄이 없으면 계절을 이룰 수 없고 인이 없으면 사단을 이룰 수 없다. 하늘은 욕심이 없어 봄이 행하여 사시를 이루는데, 사람은 욕심이 있어 인이 해쳐져 사단을 채우지 못한다. 이에 마음이 저절로 슬퍼져 부를 지어 읊는다. - 서序, ≪정암선생문집≫ 하늘이 내린 봄에 대해서, 그…

1510년 29세(1) |2021. 04.29

보슬거리듯 따스하게 흩어지는 햇살이었다. 어느새 봄이 된 것인가. 조광조는 마당 위를 떠다니는 햇살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봄이 되었는가. 마음은 그렇다고 한다. 눈을 열어 이 햇살을 담아보라고, 저 양명한 기운을 느껴보라고. 이렇게 봄이 온 것이라고. 생각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1498년 17세 (8) |2021. 04.08

양팽손의 경우처럼, 이 무렵부터 조광조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중종 원년 병인(1506년) 선생 나이 25세가 되었다. 이해에 중종의 반정으로 연산주의 잔학한 정치가 혁신되어 선비의 기세가 더욱 상승되었다. 선생이 비로소 그 학문으로 선비를 가르치니 원근에서 풍문을 듣고 와서 배운 자…

1498년 17세 (7) |2021. 03.23

학문에 미친 광자狂者 스승의 죽음을 전해 듣던 해, 조광조는 스물셋이 되었다. 그사이 열여덟 살에 혼인을 했고, 열아홉 살에는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복服을 입었다. 지아비가 되고 삼년상을 치러냈으니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그동안 그는 다른 스승을 구하지 않고 홀로 학문에 정진했다…

1498년 17세 (6) |2021. 03.15

도란 겨울에 가죽옷 입고 여름에 얼음물 마시는 것에 있는데 道在冬裘夏飮氷 날이 개면 가고 장마 지면 멈추는 것을 어찌 완전히 하겠습니까. 霽行潦止豈全能 난초도 세속을 따르면 마침내 변하고 마는 것이니 蘭如從俗終當變 소는 밭 갈고 말은 타는 것이라 한들 누가 믿…

1498년 17세 (5) |2021. 03.03

그리고 6년 후, 갑자년(1504년)을 피로 물들인 두 번째 사화는 무오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문자가 아닌 침묵이 죄를 입었다. 침묵 속에 묻어뒀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 씨의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엔 더없이 좋은 불씨였다. 연산군으로서는 부왕에…

1498년 17세 (4) |2020. 11.24

그러다가 마침 한 사람이 걸려들었다. 이미 선정을 포기한 채 그릇된 욕망으로 치닫던 임금과, 그런 임금 아래서 출세를 꿈꾸던 이들이 찾아낸 맞춤한 먹잇감이었다. 사화를 주도한 유자광柳子光은 의 글귀 하나하나를 풀어 연산군 앞에 아뢰며 그 부도不道함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임금을 부추겼다.…

1498년 17세 (3) |2020. 11.17

김굉필은 결국 한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6년 후 앞서의 것보다 더 참혹한 또 한 번의 사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수학기간은 짧았으나 조광조에게는 유일한 스승이었으며, 자신의 일생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만남이었다. 김굉필을 유배로, 그리고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두 번의 …

1498년 17세 (2) |2020. 11.09

그런데 이 겨울 속에 아직 꿈을 꾸는 자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이런 시절에 도의 뜻을 구하고자 한다니. 더구나 죄인에게 직접 배움을 청하겠다니. 우리의 학문이란 이제 불온한 자들의 위험한 수사로만 남질 않았던가. 제자를 자처한 이상 어떤 화가 닥칠는지 모르는 일이다. 양희지의 소개 글까지 …

1498년 17세 (1) |2020. 11.03

이 길이다. 끝까지 따라가라 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눈길 위로 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매섭게 후려치는 바람을 앞세워 추위도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다시 눈발이 이어지려는 기세였다. 그렇다고 마냥 따스한 계절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이 긴 겨울이 언제 끝나겠…

기묘년 11월 15일 밤 (4) |2020. 10.28

결국 조광조는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이틀 후인 11월 18일, 유배지로 떠나게 된다. 엄청난 속도의 사건 처리였다. 그의 무죄를 호소하는 수많은 탄원과 상소가 있었으나 중종은 조광조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나마 신하들의 만류로 참형만은 멈췄던 것.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지…

기묘년 11월 15일 밤 (3) |2020. 10.20

기습적인 작전을 감행해야 할 만큼 상대가 위험한 이들이었을까. 그래봤자 대간, 승지, 홍문관원 들로, 무력과는 거리가 먼 서생들일 뿐. 그들은 중종 자신과 경연에서 항시 마주했던 젊은 신하들이 아닌가. 더군다나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조광조는 임금의 넘치는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

기묘년 11월 15일 밤 (2) |2020. 10.13

하옥으로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후로도 진행되는 일이 있었으되 사관을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밝힌 셈이다. 임금이 신하와 만나는 자리에는 항시 사관이 동행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관들을 배제한다? 이 밤의 느닷없는 사건도 의아하기 그지없거니와, 게다가 사관이…

기묘년 11월 15일 밤 (1) |2020. 10.06

하지만 군사들을 밀쳐가며 경연청 앞에 다다른 그들은 또 다른 의아함과 마주해야 했다. 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과 판중추부사 김전金詮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이미 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서 달려온 자신들과는 달리, 갑작스럽기는 하나 그렇다고 큰 변고를 맞은 표정들은 아니었다…

서문 - 조광조, 그는 누구인가? (3) |2020. 09.17

우리들의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먹고사는 문제, 그것만큼이나 힘든 일은 그 문제 이외의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때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비웃기까지 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다. 조광조가 통탄했을 그 현실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니, 500년이 흘렀으되 조광조의 고민은 여전히 우리…

서문 - 조광조, 그는 누구인가? (2) |2020. 09.08

어디까지가 그의 모습인가. 완벽한 유학자에서 과격한 개혁가. 혹은 개혁의 의미마저 의심받고 있는 실패한 정치가. 무엇이 사실일까. 아무래도 그의 말과 생각을 직접 읽고 느끼면서 그 삶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조광조의 생은 그야말로 극적인 서사 그대로다. 열일곱 나이로 유배지의 스승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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