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 11월 15일 밤 (1)

조광조 평전
기묘년 11월 15일 밤 (1)
  • 입력 : 2020. 10.06(화) 10:13
  • 화순군민신문
하지만 군사들을 밀쳐가며 경연청 앞에 다다른 그들은 또 다른 의아함과 마주해야 했다. 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과 판중추부사 김전金詮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이미 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서 달려온 자신들과는 달리, 갑작스럽기는 하나 그렇다고 큰 변고를 맞은 표정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궁궐의 문은 누가 연 것인가. 당직 승지를 거치지 않고 어찌 함부로 궁문을 열었단 말인가. 윤자임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들께서는 이 밤에 어쩐 일입니까?”
“대내에서 표신을 내어 들라 하였소.”

이장곤 자신은 전후 속사정을 알지 못한 채 임금의 명을 받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전하께서 승정원을 거치지도 않고 대신들을 부르셨다니, 무슨 일인가. 윤자임은 어이가 없었다.

“정원을 거치지 않고 표신을 내다니요.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어서 사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윤자임의 생각보다 더 심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임금의 뜻을 전하는 승전색承傳色이 나와 그를 가로막으며 출입을 금했던 것이다. 더구나 성운成雲을 새 승지로 임명한다는 임금의 글을 내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한밤에 이 소동인가. 전하께서 이 모든 명을 내리고 계신 것은 사실인가. 어쩌면 전하께서도 심각한 위협에 처하신 것은 아닌가.
곧이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의금부에 하옥하라는 인물들의 명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 인물들은 놀랍게도 대간臺諫의 수장인 조광조趙光祖를 포함한, 임금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과 승지 등이었다. 이 밤, 대사헌 조광조, 우참찬 이자李耔, 형조판서 김정金淨, 부제학 김구金絿, 대사성 김식金湜, 숙직 중이던 윤자임을 비롯한 6승지 모두와 홍문관에서 숙직하던 응교 기준奇遵 등이 의금부로 끌려갔다.

그 누구도 죄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끌려가는 이들도, 포박하는 이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기묘년 11월 15일 밤

기묘년이면 1519년,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 14년이다. 이해 11월 15일 밤에 일어난 영문 모를 옥사, 역사에서 ‘기묘사화’라 부르는 이 사건의 시작을 《중종실록》은 꽤나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이어 실록은 친절하게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인다. “이후로는 사관이 참여하지 않았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