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 11월 15일 밤 (3)

조광조 평전
기묘년 11월 15일 밤 (3)
  • 입력 : 2020. 10.20(화) 08:07
  • 화순군민신문
기습적인 작전을 감행해야 할 만큼 상대가 위험한 이들이었을까. 그래봤자 대간, 승지, 홍문관원 들로, 무력과는 거리가 먼 서생들일 뿐. 그들은 중종 자신과 경연에서 항시 마주했던 젊은 신하들이 아닌가. 더군다나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조광조는 임금의 넘치는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름이었다.

혹시 중종이 어떤 위협을 받아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닐까. 혹은 누군가의 참소讒訴로 인한 오해가 아닐까. 잡혀 들어온 이들의 생각도 그랬던 것 같다.

진실은 무엇인가

조광조를 비롯한 그들은 놀라움보다는 오히려 의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옥에 갇혀 이 밤을 보내면서, 숙직으로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윤자임 등의 말을 토대로 앞뒤를 맞춰보았을 터. 아마도 누군가의 참소가 임금꼐 전해져 오해를 산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이 주도한 일이라고.

이튿날 그들이 올린 옥중소獄中疏를 보면 그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들에게 내린 죄명은 ‘붕비朋比’, 즉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당시 적용되는 대명률大明律에 따르면 참형斬刑에 해당하는 중죄다.

조광조 등의 옥중소에는 “망령되고 어설프며 우직한 자질로 성조聖朝를 만나 경연에 출입하여 임금을 가까이할 수 있었기에, 오직 성명聖明만을 믿고 우충愚衷을 모두 말했습니다. 뭇사람의 시기를 받았으되 임금만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임금이 요순 같은 임금이 도게 하고자 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제 몸을 위한 꾀이겠습니까. (중략) 임금 계신 곳이 멀어 생각을 아뢸 길이 없으나 잠자코 죽는 것도 참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친히 국문하시는 것을 한 번만 허락해주시면 만 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뜻은 넘치나 말은 막혀서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중종실록》 1519년 11월 1일 열한 번째 기사


조광조의 절절한 목소리다. 간청은 하나였다. 한 번만 친히 국문해달라, 그러니까 직접 만나서 내 얘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어제까지 멀쩡히 모시던 군주에게서 참형 죄를 입었으니, 억울함에 앞서 이해가 되지 않았으리라. 자신이 한 일은 오직 요순시대를 꿈꾼 것뿐. 그런 자신을 불러올린 것은 바로 임금이 아니었던가. 오해도 풀지 못한 채 잠자코 죽을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중종은 사랑하던 신하의 청을 외면했다. 조광조와 대면하기를 거절한 것이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