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년 29세(2)

조광조 평전
1510년 29세(2)
  • 입력 : 2021. 05.21(금) 14:34
  • 화순군민신문
그러므로 봄이 없으면 계절을 이룰 수 없고 인이 없으면 사단을 이룰 수 없다.
하늘은 욕심이 없어 봄이 행하여 사시를 이루는데,
사람은 욕심이 있어 인이 해쳐져 사단을 채우지 못한다.
이에 마음이 저절로 슬퍼져 부를 지어 읊는다.

-<춘부> 서序, ≪정암선생문집≫

하늘이 내린 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들 마음의 봄에 대해서 읊고자 했다. 사시의 섭리와 사단의 이치를 되새기고 싶어서. 봄의 순리를 따르는 하늘과, 인을 해치는 사람의 욕심을 돌아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봄을 맞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 선 스스로를 위해 읊어야 할 노래였다.

스물아홉 봄날의 진사시

봄을 맞는 마음이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에게 아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봄 햇살에 눈이 부셔, 새삼 자신의 봄을 다짐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봄 앞에서, 정녕 봄이 온 것인가 여러 날 그 햇살을 가늠하며 고민하기도 했을. 좀처럼 감정의 바닥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는 조광조였지만 이 봄 앞에서는 그랬을 것 같다.

더구나 그가 과제로 제출한 <춘부>를 보자면, 사시의 섭리와 사단의 이치를 나란히 사유하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철학적 원리의 한 장을 펼친 것이라 할지라도, 사시의 으뜸인, 생명력으로 가득한 봄을 이야기하는 그 어조에는 계절의 조화를 받아들이는 가슴의 떨림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슬퍼하고 있음은 어찌 된 까닭인가. 하늘의 순리는 봄과 함께 사시의 조화를 이어가지만, 인간의 욕심은 오히려 사단이 발하는 인仁을 해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와는 별개로, 조광조의 갈등은 이런 ‘인간’에 대한 흔들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끊임없이 욕심 앞에서 무너지는 존재. 그처럼 글 읽기에 열중하며 반듯하게 살고자 하는 것도 조광조 자신 또한 그 인간의 무리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스스로의 완성을 위해 더 깊은 학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비록 그런 존재라 하더라도, 어쩌면 그 욕심에 절망하여 더 큰 슬픔으로 빠져든다 할지라도, 인간의 나아짐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