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17세 (1)

조광조 평전
1498년 17세 (1)
  • 입력 : 2020. 11.03(화) 08:02
  • 화순군민신문
이 길이다. 끝까지 따라가라 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눈길 위로 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매섭게 후려치는 바람을 앞세워 추위도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다시 눈발이 이어지려는 기세였다. 그렇다고 마냥 따스한 계절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이 긴 겨울이 언제 끝나겠는가. 추위 따위로는 억누를 수 없는 간절함이었다.

평안도의 겨울은 북쪽 땅을 실감케 하는 한기로 가득했다. 이런 계절 속에서 시린 마음을 다듬고 계시겠구나. 가까이 뵌 적은 없었지만 이미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분이었다. 그 아름다운 이름을 따라 예까지 온 것이 아닌가. 추위가 걱정이 아니었다. 혹 선생께서 받아주지 않으신다면……. 청년은 잠시 숨을 고르며 고이 품고 온 소개장을 떠올렸다. 진심을 알아주시겠지. 저 길 끝에 나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 안에 계시는지요.”

유배지의 죄인에게 한가한 손이 찾을 리 있겠는가. 하물며 이 추운 날에 누가 나를 부른다는 말인가. 그것도 생기가 느껴지는 젊은 음성이었다. 김굉필金宏弼은 의아한 마음으로 뜻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젊은이가 내어놓은 편지는 전 대사간 양희지楊熙止의 것이었다. 느닷없는 연락이었다. 소식을 주고받은 지도 꽤나 오래된 그가 한 젊음을 소개하고 있었다. 소략한 글이었으나 담긴 뜻은 충분했다. 그대에게 배우기를 간절히 청하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이 삼엄한 시국에 혹여 서로에게 화가 되는 일은 아닌지, 근심하여 머뭇거리는 어조였다. 하지만 기대감이 없었다면 이런 편지를 써줬을 리 만무하다.

수재秀才 조 군은 친구의 아들이다. 나이 이십도 못 되었는데 개연히 도道를 구하려는 뜻을 지녔다. 김대유金大猷 대유는 김굉필의 자字다.
선생의 학문이 연원 있으시다는 말을 듣고서 그의 아버님이 계셨던 어천魚川으로부터 대유의 희천熙川 적소謫所에 가서 옷깃을 여미고 공부하기를 청하려 함에, 나에게 소개하는 편지 한 장을 구한다. 내 근년 이래로 친구 간에 왕복 편지를 끊은 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 간곡한 뜻을 다만 편지로만 할 수 없기에 이 구二句의 시를 지어 대유에게 보이게 하였다. 대유는 화禍를 받고 있다 하여 서로 주고받는 것을 꺼리지나 않을는지.

십칠 세의 조씨 집안 수재 十七趙家秀
삼천 제자의 행동이라 三千弟子行
은근히 도의 뜻 구하고자 慇懃求道志
저 아득한 관서향을 찾는구나 迢遽關西鄕

양희지, <조 수재에게 주다>, 《정암선생문집》

이 무오년의 참화……, 김굉필은 회천에서 유배의 첫 겨울을 맞고 있었다. 이제 도학을 논하며 학문을 함께하는 일은 선비들의 일상일 수 없었다. 그 대가는 때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또다시 피바람이 불어 그 이름들을 마저 앗아 간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들. 조선의 무오년은 그렇게 시들어가던 중이었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