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먹고사는 문제, 그것만큼이나 힘든 일은 그 문제 이외의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때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비웃기까지 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다. 조광조가 통탄했을 그 현실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니, 500년이 흘렀으되 조광조의 고민은 여전히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 맑은 바람이 그리운 날들이다.

바른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 하물며 바른 지식인, 바른 지도자를 만나기란 그야말로 까마득한 시절이다. 조광조의 일생을 그려보기로 했다. 아쉬움 때문이다. 제대로 만나야 할 이름이건만 여전히 역사 속 고민, 그리고 그 사이를 채웠을 한 인간의 갈등이나 한숨, 그런 것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조광조의 진심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가 누구냐는 물음에 이황보다 나은 답을 준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전혀 다른 얼굴의 조광조를 만날 수는 있을 것 같다. 유학의 종장宗匠으로 박제되지 않은, 완전무결한 인격에 얽매이지 않은 조광조. 철없는 이상주의자도 섣부른 개혁가도 아니었던 조광조. 그것으로 족할 듯하다.

절망의 시대를 바로잡으려 했던 조광조의 마음속 뒤척임, 그 고민의 순간들을 따라가기로 한다. 제아무리 타고난 자질이 탁월했다고 해도 저절로 태어나는 개혁가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서른여덟 짧은 삶으로 따뜻한 이상과 뜨거운 실천의 힘을 일깨워준 사람. 이 글은 이런 시대이기에 더욱 기억해야 할 한 아름다운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조광조, 그는 누구인가.



1장
밤
기묘년 11월 15일
의문의 옥사가 시작되다

겨울의 짧은 해가 한참 전에 기울고 사위가 고요해진 시각.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밤 2고¹ 무렵, 궁문을 닫은 채 숙직하던 승지들만이 남아 있을 때였다. 그저 예사로운 소요가 아니었다. 두 승지 윤자임尹自任과 공서린孔瑞麟은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변고임이 틀림없었다. 횃불이 훤히 밝은 가운데 군졸들이 정렬해 있고, 닫혀 있어야 할 연추문이 활짝 열어젖혀져 있었다. 윤자임과 공서린은 놀란 마음에 급히 근정전 쪽으로 향했다. 전하께서는 알고 계신가. 아니, 전하께서는 무사하신가. 임금께서 반정하시던 날도 이러했을 것이다. 승지들을 따라나선 사관들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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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鼓는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는 단위로, 2고는 밤 9시에서 11시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