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 11월 15일 밤 (4)

조광조 평전
기묘년 11월 15일 밤 (4)
  • 입력 : 2020. 10.28(수) 08:33
  • 화순군민신문
결국 조광조는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이틀 후인 11월 18일, 유배지로 떠나게 된다. 엄청난 속도의 사건 처리였다. 그의 무죄를 호소하는 수많은 탄원과 상소가 있었으나 중종은 조광조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나마 신하들의 만류로 참형만은 멈췄던 것.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한 채 유배지로 떠났으며,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한 죄인에게 직접 그 죄를 토설받으려 하지 않았다. 조광조의 생각처럼, 어긋난 오해였을까. 아니면 중종의 판결처럼, 붕비의 중죄였을까. 두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건의 진실은 그 간극이 너무 크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이 기묘한 11월 15일에 이르기까지, 사실 그들은 그리 오래 만난 사이는 아니었다. 조광조가 과거에 급제한 것이 중종10년(을해년, 1515년) 8월이었으니 군신의 신의로 맺어진 기간도 겨우 4년 몇 개월. 어쩌면 그 이전 두 사람의 삶에, 어쩌면 출사한 지 3년도 못 되어 당상관에 올랐던 조광조의 초고속 승진 과정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을까. 아니, 차마 말하지 못하는 두 사람 마음의 무언가가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제 한 사람의 남은 운명은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런데 더욱 의아한 것은 유배에 처한 조광조를 향한 세상의 관심이다. 임금에게 죄를 입어 정치 일선에서 내쳐졌으니 그 이름이 기억에서 흐려지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조광조의 이름은 이후로도 오래도록 조정을 떠나지 않는다. 중종 시대는 물론 중종 사후에도 한시대를 움직인 주요 상소의 주연으로 살아나기까지 한다. 여운이라 하기엔 사뭇 큰 울림이다. 정치 이력이라곤 나이 서른넷에서 서른여덟 사이의, 겨우 4년 몇 개월. 어떤‘일’을 해내기엔 벅차도록 촉박한 그 시간 동안 그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조광조의 연보를 따라 출발선으로 돌아가 본다. 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열일곱 청년 시절에 스승을 찾아 나선 이야기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