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17세 (8)

조광조 평전
1498년 17세 (8)
  • 입력 : 2021. 04.08(목) 13:40
  • 화순군민신문
양팽손의 경우처럼, 이 무렵부터 조광조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중종 원년 병인(1506년) 선생 나이 25세가 되었다. 이해에 중종의 반정으로 연산주의 잔학한 정치가 혁신되어 선비의 기세가 더욱 상승되었다. 선생이 비로소 그 학문으로 선비를 가르치니 원근에서 풍문을 듣고 와서 배운 자가 대단히 많아졌다.
-<정암선생연보>, 《정암선생문집》


이처럼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막론하고 찾아와 배운 자가 대단히 많을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풍문을 듣고’ 왔다는 사실이다. 시절이 바뀌니 조광조의 미친 듯한 태도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미친 듯한 공부가 되는 것일까. 다음은 그의 일과를 알려주는 연보의 한 부분이다.

매일 닭이 울면 세수하고 빗질한 후, 엄숙하고 단정히 앉아 심기를 편안히 하고 굽어 읽으며 우러러 생각하였다. 생각하여 체득지 못하면 비록 날이 다하고 밤을 새우더라도 반드시 터득을 하고, 스스로를 한정 지을 생각은 전연 갖지 않았다.
-<정암선생연보>, 《정암선생문집》



이른 아침부터 단정히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은 여느 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학문에 남다름이 있었다면 그 마음이 남과 달랐던 것. ‘스스로를 한정 지을 생각은 전연 갖지 않았다’니, 학문 앞에서 이보다 더 오만하고 이보다 더 겸손한 마음가짐이 있을까. 그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마주했다면, 그를 따라 광자의 무리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이 젊은이라면 불쑥 솟구치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이 광자의 학문도 이제는 세상으로 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반정으로 임금이 바뀐 뒤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과거 시험에 응하지 않은 채, 한정 짓지 않는 공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자뻘의 어린 벗들이 출사하는 동안에도 몇 해를 더 책 속에 파묻힌 채로.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