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년 29세(1)

조광조 평전
1510년 29세(1)
  • 입력 : 2021. 04.29(목) 09:54
  • 화순군민신문
보슬거리듯 따스하게 흩어지는 햇살이었다. 어느새 봄이 된 것인가. 조광조는 마당 위를 떠다니는 햇살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봄이 되었는가. 마음은 그렇다고 한다. 눈을 열어 이 햇살을 담아보라고, 저 양명한 기운을 느껴보라고. 이렇게 봄이 온 것이라고. 생각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한다. 햇살의 빛깔이 조금 바뀌었다고, 따스한 기운이 조금 스쳐 갔다고, 온전히 봄이라 믿어도 좋은 것인가. 잠깐 내비친 한 조각 햇살인지도 모른다. 기나긴 추위에 지친, 오랜 기다림이 불러온 성급한 착각인지도 모른다. 조광조는 이 봄을 봄으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속 작은 두런거림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었다. 긴 겨울이었다. 아직은 차가운 대기 사이로 힘겹게 스며들며 잘게 부서지는 햇살 앞에서, 그 햇살 속으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톡톡,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스물아홉. 이제 봄을 만난 것인가.
이미 바뀐 세상이라고 한다. 반정으로 보위에 오른 임금의 치세 벌써 다섯 해. 지난 시절의 그릇됨을 씻고, 한 걸음 한 걸음 이 나라에도 봄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고 했다. 아직 기억 속의 겨울을 채 정리하지 못한 이들의 마음에도 조금씩 봄의 소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 마음을 열어보라고, 달라진 세상으로 나와 보라고 부르는 소리들이었다.

“효직孝直, 이제 성균관에서 함께 글을 읽음이 어떻겠는가.”

“선생님, 그리하시지요.”

벗들의 마음이었다, 조광조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과거에 응했으면 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다. 출사는 아니더라도 유생으로 학문을 함께 나누자는 말이겠다. 조광조의 이 봄을 벗을 또한 달리 느낀 까닭일까.
스물아홉. 진사시進士試를 치르기엔 어울리지 않은 나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를 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방향에 따를 일이다. 준비되지 못한 자의 섣부른 봄노래는 자칫 움트는 생명들에게 햇살 한 줌 베풀지 못할 수도 있다. 노래하는 자, 그 자신에게도 그렇다. 공부는 스스로의 깨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성균관에서 함께하는 것 또한 자신을 돌아보기에, 이 나라의 사류士類를 돌아보기에 필요한 길일 수도 있으리라.
경오년(1510년) 봄, 진사시에 응했다. 과제로 써낸 글은 <춘부春賦>, 봄의 노래.

음양陰陽이 섞여 사시四時의 차례가 이루어지니 이 중에 봄이 자연의 으뜸이다.
사시는 봄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단四端은 인仁으로부터 발한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