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25 유비무환(有備無患) 교훈을 잊지 말자

칼럼
한국전쟁 6.25 유비무환(有備無患) 교훈을 잊지 말자
  • 입력 : 2021. 06.08(화) 13:24
  • 화순군민신문
이영일 화순문화원장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산야는 온통 초록 일색 대지에는 생명력이 활기차게 넘치고 붉은 태양이 작열(灼熱)하는 성하(盛夏)의 계절 6월 보리가 익어 수확되는 때이며 보리 수확 후 이모작 모내기가 시작되는 시기로 본격적인 농번기(農繁期)라 또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와의 전쟁 중이다.
그러나 6월하면 현재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는 우리는 언뜻 생각나는 것이 현충일(顯忠日)과 6.25한국전쟁(韓國戰爭)임을 누구도 부인 못 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충일과 6.25 한국전쟁은 불가분의 관계로 만약 6.25전쟁이 발발하지 아니하였다면 오늘날 연례적으로 행사를 거행하는 현충일(顯忠日)은 존재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0년(庚寅)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미명(未明)을 기하여 북한 공산도배(共産徒輩)들은 남침했다.
8.15광복(光復) 후부터 북한 공산당은 당시 중공(中共)과 소련(蘇聯)의 지원으로 한반도(韓半島) 전역적화(全域赤化)를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준비한 후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탱크를 앞세우고 포화(砲火)를 울리며 사전에 선전포고(宣戰布告) 없이 천인공노(天人共怒) 할 불법남침(不法南侵)을 감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북한 공산당 적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미증유(未曾有)의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나라의 수도는 대부분이 마지막에 함락되는 것이 고금의 예인데 단 사흘 만에 수도가 함락되는 것은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1950년 6월 29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진격이 가속화되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는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할 경우 장차 인천으로의 상륙작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결과는 1950.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북한군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하고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을 감행 적을 섬멸하고 한반도 전세 역전하여 신의주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 개입으로 3.8선까지 후퇴 휴전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휴전이 되기까지 37개월 동안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 그 자체(自體)였다.

70년이 경과되었지만 그 상흔(傷痕)은 현재까지 곳곳에 남아 있으며 미래에도 쉽게 치유(治癒)되지 아니할 것이며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그 전흔(戰痕)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한반도 전역은 적화(赤化)되어 오늘날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습(世襲) 일당독재(一黨獨裁)하의 끔찍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기조차 하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만 될 것이며, 6.25 한국전쟁을 통하여 교훈(敎訓)을 얻어야 할 것으로 6.25전쟁은 단순한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며 현재에도 휴전 진행 중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에 거안사위(居安思危) 정신이다.
서경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고사 성어로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없고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6.25 한국 전쟁 발발 전에도 북한 공산도배(共産徒輩)의 남침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이 가는 것으로 한반도 38도선 전역에서 남침의 징후가 포착이 되었었는데 여기에 대한 미리 대비책을 확고히 수립해 놓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복(光復) 후부터 중공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군은 급격히 무력을 증강하여 호시탐탐(虎視耽耽) 남한의 적화(赤化 공산주의로 변해 감)를 위해서 전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여 놓았더라면 단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침해 오는 공산군에 대해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낙동강(洛東江) 전선까지 밀리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만약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지원이 상당히 지연되거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이 성공하지 못하였더라면 우리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하여도 아찔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항상 한국 전쟁 참전 장병과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군의 지원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토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서 각자 나름대로 각자의 처지에서 국가와 국토, 국민을 위해서 애국정신(愛國精神) 함양에 최선을 다해야 될 것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명언을 생각하며
1. 기습이야말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긴요한 요소이다.
​2.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둘째, 천하수안(天下雖安)망전필위(忘戰必危)의 교훈이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마양저의 말이다. 천하가 비록 편안하여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는 말로서, 6.25 한국 전쟁과 유사한 전쟁이 다시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임진, 정유왜란(壬辰, 丁酉倭亂)이나 정묘, 병자호란(丁卯, 丙子胡亂)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침략의 징후가 보임에도 여기에 대한 강구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여 외부의 침략 시 국가의 수치는 물론 일반 국민의 참혹상은 필설(筆舌)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하였다.

전쟁 발발 전 비록 천하가 편안하였으나 외부의 물리력에 대한 대비책이 부실하여 속수무책(束手無策)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200년 경과되는 해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그 전에도 왜국의 침략 가능성이 보였다. 외부의 큰 침략이 별로 없는 평화적 분위기가 계속되다 보니 안일과 나태에 빠지는 상태가 되어 국방도 고식적 대책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자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리고 수도 한양이 20일 도 못 되어 함락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평화 시에 대비책이라도 강구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수도 한양이 함락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반 백성들은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비록 400여 전의 임진왜란이지만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천하가 비록 편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중국 병서에 나오는 말로 우리에게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의 교훈을 다시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전이 굴인지 병이면 선지선자야(不戰而 屈人之兵 善之善者也)로 손자병법 모공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즉 싸우지 아니하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말이다. 일단 싸우게 되면 피차간에 크든 작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이고 패한 측은 절치부심(切齒腐心) 복수의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또 싸우게 되는데 승부란 것이 일승일부(一勝一負)라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전쟁이란 것이 국력이 수평 상태이면 전쟁이 여간해서는 발발하지 않는다.
수평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면 전쟁이 발발하는 것으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적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적국과의 평형상태의 국력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력을 필수요건으로 하는 것인바 힘없이 평화만 절규하는 것은 공허만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6.25사변 70주년을 맞이하여 70년 전의 6.25가 재발되지 않도록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과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중국 병서에 나오는 말로 우리에게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의 교훈으로 많은 언급되는 문구로 간단하게 "세상이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기...망전필위(忘戰必危)의 교훈을 명심하고 부전이 굴인지병 선지선자야의 병법을 숙고하여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한다면 남북평화통일의 길은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며 세습 전제 일당독재 체제는 자체적으로 와해될 것으로 확신한다.
자유와 국토수호를 위해 산화하신 참전 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모든 참전 장병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국민 모두 천하수안(天下雖安) 할지라도 유비무환(有備無患) 하자.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