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회복(道德性回復)으로 참된 인간이 되자

칼럼
도덕성회복(道德性回復)으로 참된 인간이 되자
  • 입력 : 2021. 04.30(금) 11:26
  • 화순군민신문
이영일 화순문화원장
옛 어른 말씀에 ‘자식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만 먹이면서 예의(禮義:- 道德心)를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같이 유치한 나이, 초등학생 시절에 도의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몸에 굳어져 습관화된 악질은 치유하기가 어려워지게 되고 만다. 중, 고등학생 시절만 되어도 기존 질서에 반항심을 갖게 되어 진실을 가르쳐 주어도 부정하거나 반박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보다도 무서움이 앞서는 때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어른들의 세계는 물론이려니와 어린 소년소녀들의 폭력, 성문란, 퇴폐적인 몸가짐과 행동, 낭비, 윗사람과 스승을 어려워하지 않는 등의 부도덕하고 패륜 된 행위들은 어려서부터 도의 교육을 제대로 행하지 않은 까닭에 그 원인이 있다.
도덕성 회복, 인성회복은 조기교육으로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도덕불감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교육당국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영어 조기교육, 컴퓨터 조기교육도 중요하지만 우선 "도덕성 회복"을 위한 도의(道義) 조기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성이 결핍된 곳에는 국가의 헌정질서가 깨지고, 사회의 법질서가 무너지고, 어른과 아이의 차례가 흐트러지고, 가정의 화목과 단란함마저 함몰(陷沒) 되는 비극이 깃들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가 아닌가?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고 안타까움만이 구렁이가 휘어감아 오르듯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순간의 위기를 국가적 사회적 치유책이 없이 용케도 버티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힘에 겨운 버팀이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국가적 전 국민적인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종신행선(終身行善)이라도/선유부족(善猶不足)이오/
/일일행악(一日行惡)이라도/악자유여(惡者有餘)니라.“/ <마원>
일생 동안 착한 일을 하여도/착한 일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라도 악한 일을 하면/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다"

춘원(春園) 이수광 소설가는 1922년 월간 ‘개벽(蓋甓)지’에 발표된 민족개조론이다. 비록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우리 민족의 퇴영적(退嬰的)인 의식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분의 주장 첫째,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행실이 없게 하자. 둘째, 공상(空想)과 공론(公論)을 버리고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무라 생각하고 즉시 시행해야 한다. 셋째, 표리부동(表裏不同) 함이 없이 의리를 지켜야 한다. 넷째, 옳은 것과 그른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거짓말’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뉴스를 보면 온갖 사기 사건이 화면을 뒤덮고 있는 것을 매일 볼 수 있다. 하도 식언(食言)을 잘하니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나.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길 수가 있나. 도처에 사기꾼이니 전화를 마음 놓고 할 수가 있나. 거짓말에 당하는 것이 무서워 남을 믿지 못하니 사회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눈 감으면 코를 베어 간다 했는데 지금은 눈 뜬 사람 코를 베어 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나라를 사기 대국이라 한들 무어라 반박하기 어려운 현상이라

“도오선자시오적(道吾善者是吾賊이요/
도오악자시오사/” 道吾惡者是吾師/ <명심보감>
나의 좋은 점만을 말하는 이는 나의 적이요/
나의 나쁜 점을 지적하여 말하는 이는 나의 스승이다.

이는 곧 칭찬은 듣기 좋으나. 지나친 칭찬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이 되므로 자기를 바르게 하는 데 방해가 된다. 반면에 남의 충고는 듣기 싫으나. 자기의 결점 허물을 일깨워 주어 자기를 반성하고 잘못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스승의 가르침과 같다. 지나친 칭찬은 경계하고, 남의 충고는 반겨 받아들이자는 선인들의 말씀이다.
도덕성 회복으로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 한자 그대로 읽자면 물 뿌리고 쓸고 사람을 대하여 맞이하고, 나아감과 물러감의 예절 자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할 줄 알고 사람들을 맞이할 때는 친절과 쇄소응대(灑掃應待) 조기교육으로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도덕'이란 교과서가 있었다. 그땐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예의범절이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사회혼란이 예상돼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도덕(道德)이란 교육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는 도덕이란 명목 아래 강제적 예절교육도 포함됐다. 그러나 변화하는 서구 선진국에서의 자유와 평등, 인간 위주 교육의 새 바람이 불면서 점차 그 진가가 퇴색됐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일상생활에서의 예의와 예절보다 오히려 변해가는 개인적인 서구의 기사도 정신에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결국 예를 중시한 선비정신은 구태의연한 교육 방법이 돼 '도덕'이란 명목의 교과서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서라도 도덕과 인성교육의 부활을 요구한다. 기초적인 예의범절 교육이라도 받자는 것이다. 예의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만의 마음에서 순수하게 우려 나오는 양심의 원천이다. 반면 예절은 강제성 더 나아가 지적 능력 즉 인간이 꼭 배워야 할 관계 규범이다. 인간다움은 도덕의 넓은 의미에 속한다. 그렇다면 도덕은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을 지켜야 할 가치가 곧 우리 사회를 지탱한다 할 것이니 도덕성 회복을 위한 조기교육으로 참된 인간이 되자.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