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프롤레타리아를 꿈꾸던 청년 박현채

●임무 수행 도중 경찰에 체포되다

박현채가 신병으로 인해 마무리하지 못한 회고록은 여기까지만 기술되어 있다. 이후 그는 1952년 8월 4일 화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태백산맥』에서 박현채를 모델로 조원제라는 소년 전사를 그려낸 조정래는, 조원제가 체포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꼼짝 말엇!” 방문이 박살 나며 구둣발이 뛰어들었다. “어!” 조원제와 또 한 사람이 숟가락을 내동댕이 치며 총으로 손을 뻗치련느 순간 눈앞에 총구멍이 들이닥쳤다. “꼼짝 말고 손 들엇!” 경찰은 소리치며 조원제 옆에 놓인 총을 구둣발로 밀어 찼다. 총은 방구석으로 쭈루룩 밀려갔다. ‘속았구나. 허망한디!’ 조원제의 머리를 친 생각이었다.

그의 입에는 밥이 가득 물려 있었다. “싸게 손들엇!” 다른 경찰이 조원제 옆 사람의 총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조원제와 옆 사람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조원제는 선요원도 속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싸게싸게 일어낫!” 조원제를 겨누고 있는 경찰이 총구를 휘둘렀다.

박현채와 함께 체포된 장기형(가명)은 뒷날 박현채의 하산 및 체포와 관련해 삭다른 견해를 밝혔다. 당에서 그의 능력을 아낀지라 일부러 그를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영리한 박현채가 산에서 죽기에는 아깝다고 판단했고, 그가 장기형과 가깝다는 것을 알고는 장기형을 따라 하산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형의 친척들이 화순경찰서에 이들이 내려올 것을 미리 알려준 탓에 박현채는 결국 체포되었다. 장기형의 가족들은 빨치산 대장인 박현채를 잡도록 경찰을 도와주면 장기형을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박현채는 부대를 떠나 8월 5일에 실시될 정⋅부통령 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아무런 일도 시작해보지 못한 채 침투하자마자 붙잡힌 것이다. 거점책이 이중첩자였음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를 통해 그간 빨치산 조직의 물이 새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장기형의 증언에 의하면, 박현채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으면 산속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족들의 공적으로 경찰에 붙잡히긴 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현채가 검거되자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 그의 구명에 나섰다. 탄원서를 돌리고, 경찰에게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아들을 살려내려했다. 박현채의 아버지는 아들을 빼내려고 화순 경찰서장에게 돈을 갖다주면서 무릎까지 꿇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는 살아 돌아올 아들을 생각하며 틈틈이 비축해둔 쌀을 경찰서에 갖다주었다. 그 덕분에 박현채는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에 정권이 부패한 탓에 쌀 30~50가마니를 내면 체포된 빨치산을 풀어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타락이 박현채를 살린 셈이다. 함께 풀려난 장기형은 “현채가 빨치산 경력 땜시 평생 고생혔는디, 안 그라고 공부만 혔으믄 지금보다 더한 대학자가 되았을 것이여”라며 그를 회상했다.

젊은 날 한때 지리산에서 ‘소년 빨치산’으로 사투를 벌였던 박현채는 뒷날 ⌜지리산의 민족사적 위치⌟라는 글에서 지리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전후 역사에서 지리산은 산으로서의 모성이 강조되기보다는 부성이 강조되는 시기다. 전후 남북 분단과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둘러싼 민족 대립은 산, 그것도 지리산을 거대한 군사기지로 전화시켰다. 1948년 10월의 여순 반란, 그리고 1950년 6월의 한국동란이 귀결한 것은 지리산을 거대한 군사기지로 되게 하면서 동족간의 피나는 싸움의 장으로 하게 했다.

민족의 에너지는 그것에 앞서는 시기에 외세에 저항하여 민족해방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나 전후의 상황에서는 동족상잔으로 되면서 앞선 자들이 자기 죽음으로 만든 땅 위에 민족의 새로운 젊은 싹들을 다시 잠들게 했다. 수난의 땅으로서의 지리산의 한(恨)은 여기에 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김삼웅 선생이 한겨레 출판사에서 2012년 10월 9일에 발간한 『박현채 평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김삼웅 선생의 양해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