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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진폐재해자협회 광주시 전남지부는 1988년 8월 화순에 문을 열었다. 당시 150여명에 불과했던 회원들은 협회가 만들어진지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1,100여명으로 훌쩍 늘었다.
회원들의 증가는 그만큼 진폐환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화순군에만 700여명이 진폐판정을 받고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하지만 늘어난 회원 수가 많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이 진폐협회다.
진폐는 해로운 먼지를 장기간 흡입해 폐조직 내에 분진이 침착해 생긴 병이다. 화순에서만 한해 60여명, 전국적으로 한해 평균 800여명이 진폐로 사망하고 있다. 진폐판정을 받은 환자는 광주전남에만 1,100여명이지만 병원에 입원해 요양치료를 받는 회원은 고작 250여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진폐때문에 잦은 감기와 호흡곤란 등의 고통을 겪으며 병원을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요양환자들과 달리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해 왔다. 이원조 회장은 회원들의 이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전남도에 진폐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적극 요청, 지난해부터 진폐환자와 배우자의 의료비 중 본인부담금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 냈다.
환자도 환자지만 그 옆에서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의 고통또한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배우자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구해 배우자의 의료비 지원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올해는 전남도로부터 6,6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회원과 배우자 1인당 15만원씩의 의료비를 지원한다.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 회원들이 병원이나 약국에 지불한 의료비 영수증을 협회에 제출하면 절차는 협회에서 진행해 준다. 회원들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유족보상이나 유족위로금 신청 등의 제반절차 진행도 도움을 준다. 회원들이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매년 1회 회원들만을 위한 건강강좌도 연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 탓에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이원조 회장은 진폐환자들이야말로 60~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산업역군들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석탄산업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자부심만으로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당시에는 정부에서조차 ‘진폐’가 무엇인지, 탄광에서 나오는 먼지를 오래도록 들이마시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진폐예방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지금은 황사가 조금만 날려도 마스크를 쓰지만 당시에는 뿌연 먼지가 가득한 탄광에서 연신 기침을 해대며 탄을 캐면서도 마스크하나 제대로 쓰지 않고 일했다.
이원조 회장은 지금은 탄광내부가 통기도 잘되고 수시로 물호수로 먹지를 제거하는 등 작업환경이 많이 좋아졌다며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작업환경에 신경을 썼더라면 지금같이 많은 사람들이 진폐로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산업일꾼이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진폐라는 비참한 현실로 나타난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고.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여도 조금만 빨리 걷거나 계단이라도 오르내릴라치면 숨이 가빠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진폐환자들이다. 그런만큼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고통 또한 크다. 멀쩡하게 길을 걷다가도 숨이 가빠 그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도 한다.
이원조 회장은 정부는 물론 화순군에서도 이런 진폐환자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딱히 내세울 관광지도 없는 화순경제에 큰 몫을 담당했던 석탄산업, 사향길로 접어든 지금도 폐광지역진흥자금 등의 명목으로 수백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석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뒤에는 석탄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진폐라는 몹쓸병을 얻은 진폐환자들이 있다는 설명이다. 강원랜드 복지재단으로부터 매년 수억원의 복지기금을 지원받는 것 또한 석탄이 있었기 때문이고 석탄산업을 묵묵히 이끌어 온 노동자들이 진폐를 앓으며 고통받고 있기에 이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원조 회장은 화순군이 적어도 매년 4천만원 정도는 협회에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산을 지원받으면 지난해 10월 완공된 석탄산업 순직자와 진폐환자 위령공원에서 매년 먼저 간 회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낼 생각이다. 위령공원에 작은 비석을 세워 회원들과 순직자들이 무엇을 위해 숨졌는 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알릴 계획도 갖고 있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는 회원들에게 휴대용 산소마스크도 전해주고 싶다.
이 회장은 진폐라는 병을 얻어 하루하루 죽음과 맞서싸우는 회원들, 한때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회원들이 이 나라 이 땅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 마냥 서글프다고 말한다. 그래서 위령공원에 세워진 비석에 진폐와의 힘든 싸움에 져서 끝내 이 세상을 떠난 회원들의 이름도 새기고 위령제도 지내고, 회원들에게 필요한 도움도 줄 수 있도록 화순군이 협회 운영에 관심을 갖고 지원 해 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순에 수백억원의 정부예산을 가져오게 한 석탄산업을 위해 젊음을 바친 산업역군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미경 기자 mkp03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