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호 변호사

4·15총선이 역대급 이상의 결과를 내고 마무리되었다. 180석 더불어민주당 압승, 103석 미래통합당 참패, 중도지대 몰락, 정의당 고군분투 정도로 정리될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결과가 내포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일단 대구경북이나 호남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도권을 기준으로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이번 총선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의 권력교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기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산업화 과정에서의 사회 주류를 차지했던 60대 이상의 보수 세력이 점차 물러나고, 80년대 민주화에 기반한 개혁 세력이 주를 이루는 50대와 그 기반 하에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40대가 권력의 중심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 이번 선거다. 2016년 총선이후 변화의 흐름이 이어지다가 이번 선거를 통해 그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필자 역시 60년대생, 87학번으로 대학교 1학년 당시 6월항쟁을 거쳐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면서 민의를 통해 기존 체제가 바뀌는 과정을 직접 겪다보니 그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고,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사회 변혁에 대한 기대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현 50대는 과거의 50대와는 다르다. 확실시 보다 진보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세대이다. 고령화로 인하여 50대 이후의 인구 비율이 높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일반론에 빠지다보니 그동안 투표권자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는 보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상대적 다수라는 전제에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하여는 부득이 정치 세력간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셈법이 강했고, 과거에는 그러한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했었다.

김대중 정권 창출을 위한 자민련과의 연대나, 노무현 정권 창출을 위한 정몽준과의 단일화 시도, 문재인 정권 창출을 위한 안철수 세력과의 연대 시도 등이 위와 같은 세력의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수 세력의 고정표가 40% 전후라면 진보세력의 고정표는 그보다는 못미치고 소위 중간세력의 표를 합해야만이 보수세력을 누르고 선거에서 이길 수밖에 없다는 계산하에서의 연대는 필수적인 요소였고, 이명박-정동영간 대선을 치르면서 진보세력이 느꼈던 절망감은 극에 달했었다.

그렇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최근 4년간의 흐름을 보면 확실시 세력 교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이는 80년대 민주화 과정에 대학을 다녔던 50대가 기존의 50대와 다르게 진보적인 색채로 바뀐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흔히 선거의 3요소는 구도·인물·이슈를 꼽을 수 있고, 그보다 본질적인 선거 요소는 기본 지형을 꼽을 수 있다. 정치 지형이란 쉽게 말하면 유권자들의 기본적인 의식구조, 즉 자신은 보수적이다 혹은 자신은 진보적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향성을 말한다. 기존에는 정치지형이 보수 우위였다면 최근 수년간의 선거를 통해 진보 우위의 정치 지형으로 변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유권자의 중심 연령대인 50대가 기존 보수 우위였던 것이 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이 50대에 이르면서 진보 우위로 바뀐 것이 결정적인 지형 변화의 원인으로 보인다.

고무적인 것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현재의 50대가 60대, 70대로 나이들어가고 그러다보면 비록 ‘나이들면 사람이 보수화된다’는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60대, 70대와 같은 극단적인 보수 쏠림 현상은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부 정치평론가들이 우려하는 20대의 보수화 경향 및 이에 대한 대책이 수반되어야 위와 같은 분석이 유의미성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어떻게 운용되어야 할까?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하여 집권 여당은 180석을 차지한 것에 자만하지 말고 야당과의 협치를 통한 국회 운영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 이는 주로 기존 보수 언론들의 단골 메뉴다. 과연 그럴까? 민의의 반영은 선거로 나타난다. 여, 야가 상호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민의라면 여당에 180석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여, 야가 150석 안팎의 균형 의석을 갖도록 하는 선거 결과일 때 통하는 이야기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오히려 집권 여당에 힘을 몰아주고 기존에 추진해 왔거나 추진하려 했던 여러 개혁 정책들에 대하여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라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만약 개혁정책을 추진하는데 야당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딴지걸기를 하면 패스트트랙 절차를 통해서 강력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패스트트랙 절차를 통한 신속 처리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형식적인 ‘선의’에 매몰되고 여전히 야당의 딴지걸기식 방해가 지속된다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은 거대 여당이 될 것이다.

적극적인 개혁과제, 구체적으로는 검찰개혁, 공수처 출범, 코로나 정국 이후 예상되는 경제문제 해결, 언론개혁, 그러한 것들이 철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정치지형 자체가 단기간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기존 진보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제3지대에 투표하거나 투표를 포기해버리는 상황은 당연히 발생할 수 있다. 거기에 여전히 고정적인 3-40% 비율을 차지하는 보수 세력을 등에 업고 야당이 어부지리라도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