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목)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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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한해의 시작으로서 씨를 뿌리는 철이며 여름은 강한 태양열로 곡식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가을은 오곡백과가 곱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로서 겨울을 대비한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의 상쾌한 공기는 우리가 생활하기에 더없이 좋은 낭만(浪漫)의 계절로서 곱게 물든 가을을 만끽(滿喫)하면서 화순 남산위에 국화축제의 가을 향연이 펼쳐진다.
가을은 또한 독서의 계절이다. 곱게 물든 산을 찾아 단풍을 즐기는 것이 가을의 낭만과 멋이지만 가을에는 홀로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책의 향기에 젖는 것도 정서적 안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윤택하게 한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가는 황금들녘의 가을은 시골의 풍성함과 너그러움을 물씬 자아내며 낭만과 행복감을 선사해주는 국화향연은 자연의 축복이다.
행복은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은 각기 다르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하면은 행복함을 느끼지만 배부른 사람에게 빵을 주며 더 먹으라고 하면 행복은커녕 오히려 고통이 되고 불만을 자아내게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고(思考)가 있어야 하고 만족해 할 줄 알고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국화향연 속에서 고전 한시를 읊으며 국화향연을 즐겨보자.
天高日月明(천고일월명)이요
地厚草木生(지후초목생)이라
春來梨花白(춘래이화백)이요
夏至樹葉靑(하지수엽청)이라
秋凉黃菊發(추량황국발)이요
冬寒白雪來(동한백설래)라
月出天開眼(월출천개안)이요
山高地擧頭(산고지거두)라
(하늘은 높고 해와 달은 밝다 땅이 두터우니 초목이 자란다. 봄이 오매 풀과 나무가 자라고 여름이 이르니 나무 잎사귀가 푸르다 가을이 서늘하니 누런 국화가 피고 겨울이 차가우니 흰 눈이 내리네. 달이 뜨니 하늘이 눈을 열고 산이 높으니 땅이 머리를 드네)
하늘은 높고 해와 달이 밝음을 어느 누가 상식적으로 모르랴. 우리 인간은, 하늘은 맑고 맑아 지극히 가벼우면서도 지극히 높다는 것은 자기를 비움으로 인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하심의 덕을 배울 일이요 땅은 두터우면서도 남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도 베푼다는 생각을 잊었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겸양(謙讓)의 덕을 땅을 통해 배울 일이다.
둘째 연은 계절을 노래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봄은 만물을 틔우게 하는 생명의 기운이 있는 계절이다. 겨울 내 참고 참던 인고의 세월을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기가 가진 본래의 향기를 소리 없이 피우는 법을 배울 일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덕성을 피우며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울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나름대로 계절의 순환을 따를 일이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 아니던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강한 내성 앞에서 불굴의 의지도 배우고 가을을 통해 성숙으로 다가오는 그러면서도 국화의 강한 절개 오상고절의 기운도 맛보고, 도연명 선생의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의 忘我(망아)의 멋도 맛볼 일이다(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서 우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겨울엔 온 세상을 뒤엎는 평화의 눈, 사심 없이 어느 곳에나 내리는 눈의 포용성을 배울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연의 교과서가 우리를 항상 가르치는 걸 잊고 있다. 사시(四時)를 노래하는 구절을 고문진보의 도연명(陶淵明)의 글에서 한 구절을 따와 보자.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이요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이라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요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이라
(봄물은 사방 연못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어찌나 봉우리도 많은지(변화가 무쌍하다는 뜻) 가을 달은 밝은 빛을 휘날리나니 겨울 고개엔 외로운 소나무만 빼어났네)
달이 뜨니 하늘이 눈을 연다는 것은 컴컴한 하늘에 달이 뜨면 사방이 환해지듯 우리 인간의 눈에 비유한 것이다. 산이 높으니 땅이 머리를 든다는 것도 산의 끝 면이 지면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 길래 높은 것은 항상 낮은 곳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지위가 높을 때는 항상 낮은 것을 생각하고 하심의 덕을 배울 일이다(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맹자의 대장부론(大丈夫論)
居天下之廣居 (거천하지광거)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데서 살아가고
立天下之正立 (입천하지정립)
이 세상에서 가장 바른 자리에 서며
行天下之大道 (행천하지대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를 행하라
得志, 與民由之 (득지, 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
不得志, 獨行其道 (부득지, 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해도, 혼자서 옳은 길을 가야한다.
富貴不能淫 (부귀불능음)
부귀와 음탕함에 빠지지 않으며
貧賤不能移 (빈천불능이)
가난하고 천해도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고,
威武不能屈 (위무불능굴)
부당한 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아니하면
此之謂大丈夫 (차지위대장부)
이것이 바로 대장부가 아닌가?
시대가 참으로 혼탁합니다. 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혼탁해도 나만은 스스로 세운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화야 너는 어이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따뜻한 봄날) 다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낙엽이 다 떨어진 추운겨울)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 菊花)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李鼎輔, 1693-1766) 호는 삼주(三洲) 문인>
영국 (詠菊) (국화를 읊조리다)
- 국화 향기를 맡으며 느낀 소회를 읊다
不憑春力仗秋光 (불빙춘력장추광)
봄의 힘에 기대지 않고 가을빛에 의지하여
故作寒芳勿怕霜 (고작한방물파상)
무서리를 두려워 않고 찬 꽃을 피워냈구나
有酒何人辜負汝 (유주하인고부여)
술이 있다면 어느 사람이 너를 싫다고할까
莫言陶令獨憐香 (막언도령독련향)
도연명 혼자 국향을 사랑했다 말하지 말게
<이규보 李奎報>
陶令(도령)은 당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도연명이 팽택령(彭澤令)을 지냈기에 그를 도령(陶令)이라 불렀다.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29살에 벼슬길에 나섰지만 41살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 뒤 집 주변에 국화를 심고 완상하면서 아꼈다고 한다. 그의 시 가운데 “동편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꺾어 들고, 고개를 들어보니 유연하게 남산이 눈에 들어온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은 지금까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은 고려 중기의 문인으로 당대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선생의 시풍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저서로『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전한다.
<번역 효송 曉松>
국화(菊花)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추풍(秋風) 국화향연(菊花饗宴)
霜降乾坤赤葉天(상강건곤엽여천) 서리 내리니 하늘 땅 온누리가 붉은 잎이요
梧凋己落己來秋(오조기락기래추) 오동잎 시들어 떨어지니 가을이 왔구나.
菊花滿發饗宴吐(국화만발향연토) 국화가 만발하여 향연을 토해내고
黃野黃波豊饒歌(황야황파풍요가) 황금 들녘에는 풍요의 노랫소리 물결이라
南燕去別巢虛裡(남연거별소허리) 남쪽 재비 떠나니 집은 비어있고
北雁來還沼泳樂(북안래환소영락) 북쪽 기러기 돌아와 호수에서 수영 즐기네.
傲霜孤節感懷新(오상고절감회신) 오상고절 국화꽃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浪人賞景忘鄕愁(낭인상경망향수) 많은 인파 국화향연 속에 향수를 잊는구나.
<화순문화원장 화정(和靜) 이영일>
이 세상에 가장 어울리는 꽃은 국화일 것이다. 국화를 보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이정보의 오상고절인데... 혼탁한 작금의 세태를 보면서 국화가 지니는 의미가 더더욱 가슴에 와 닿고 오상고절(傲霜孤節) 생명을 거두는 요즈음에 이 꽃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옛 시인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추켜세운 국화, 혼탁한 이 세상에 오상고절(傲霜孤節)을 품은 올바른 양심이 꽃 피울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