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화순문화원장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 했다. 이 말은 오이가 익은 외밭에서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의관을 다시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외를 따거나 오얏을 따는 의심을 받기 쉬우므로 조심하라는 뜻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에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 믿음·의리의 중요성,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고전을 통해 알 수 있어 흉흉한 우리 사회도 신뢰(信賴)를 쌓고 살아가야 온 국민이 편안하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는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 편’에 실린 공자의 말에서 비롯됐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나라의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하였다. 자공(子貢)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자고개유사自古皆有死 민무신불입民無信不立)”고 답했다. 여기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국지(三國志)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후한 말기의 학자이자 북해 태수를 지낸 공융은 조조의 공격을 받은 서주 자사 도겸을 구하기 위해 유비에게 공손찬의 군사를 빌려주면서 도겸을 돕게 하였다. 공융은 군사를 가지면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信義)를 잃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사람은 믿음을 잃으면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군대를 빌릴지라도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바람직한 상태로 존립하기는 극히 어려우므로 평소에 늘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시, 서, 화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노력과 연습 그리고 훈련과 공부 때문이었다. 그가 큰 업적을 남기고 추사체의 창시자가 된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노력 때문이었고, 한마디로 꾸준함이 그를 만들었다. 그의 추사체(秋史體)는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되었다. 벼루 열 개와 붓 천 자루.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 또한 꾸준함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표 주자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공부할 때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하여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는데, 우리 선조인 다산 정약용은 그보다 더 독한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스킬을 우리에게 전수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했는지를 나타내 주는 말이 바로 ‘과골삼천(踝骨三穿)’이다.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공부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그가 얼마나 독하게 공부에 일로매진했던 인물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유배 18년간 500권의 책을 저술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공부와 집필을 했다.

유배지에서 무변무활(無變無活)하면서 과골삼천(踝骨三穿)이라는 사자성어가 새삼스럽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어지러이 돌아가고 사업이나 장사를 하건 직장이나 보통의 대인관계에서 믿음이라는 말이 거의 실종된 것만 같은 차갑고 정글 같은 현실이 도무지 안타깝기만 하다. 각자가 남을 믿고 또한 남이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그런 풍토가 조성된다면 이 세상은 더욱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이어 발생하는 작금의 이 현상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모든 범죄와 여러 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다툼이 왜 일어나는지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순박하고 갈등을 몰랐던 사람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변했는가? 어찌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살벌하고 메말랐는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은 형국이다. 이렇게 부조리와 범죄가 횡행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보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전반에서 서로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른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는 말이 있다. 위가 맑지 못하면 아래도 맑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듯이 윗사람의 행동이 올바를 때 아랫사람의 행동도 올바르기 마련이다. 부모는 자식들의 거울이라는 말도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알몸으로 태어나서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길어야 백 년인, 그래서 유구한 이 억겁(億劫)의 세월에 비하면 다만 찰라(刹那)에 불과하다는 우리네 일평생은 처음부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고, 화내고, 다투고 갈등해 본들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무슨 소용이나 이득이 있겠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말이겠다. 사람을 매개로 이루어진 인간사회는 그 근간이 신뢰(信賴)에 있다. 따라서 관계설정에 있어서 믿음이 없다면 그 시스템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공자께서 수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 설파(說破)했던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깊은 뜻을 마음 깊이 새겨서 그저 우리 모두 함께 믿고 의지하면서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잘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