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전남여류문학회장

오래전에 함께 근무한 동료로부터 “인격도 인격 나름이다. 신뢰가 무너졌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처음 들어본 말이라 더 생소했다. 평소에 잘 웃고 쾌활하며 긍정적인 동료의 입에서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60년대에 고등교육을 받아 직장생활은 한 시어머니는 지적이고 품위 있는 신여성이었으며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려웠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결혼 후 또 다른 이면과 부딪히면서 실망감이 컸다는 것이다. 고단수의 언어폭력과 시집살이,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언행이 심히 불쾌했지만 불평할 수 없는 상하관계로 스트레스가 커졌고, 지성인이란 표면에 감춰진 또 다른 내면의 실체가 믿기 어려울 만큼 저급하다는 것이다.

인격을 의심케 하는 행동이 정말 싫다고 말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의 됨됨이가 행동으로 보여질 때 신뢰 또한 참(진실)으로 이어지는 방정식임을 깨달았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흔히 말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간 갈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료의 말은 지금도 가슴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어 늘 언행의 기준을 스스로 상기하도록 자극한다.

인격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양을 미치고 있는지는 인과관계에서 쉽게 확인된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이나 본성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인격은 신뢰의 기초가 됨을 알기 때문이다. 남이 나일 수는 없지만 보편적, 공통적 관점에서 볼 때 최소한의 가치나 도덕성은 인격에서 비롯되며 평소의 행동을 통해 몸에 밴 도덕성은 인격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나의 작은 예로 폭염이 계속되는 요즈음, 무더위를 피해 저녁 무렵이면 동구리 호수공원 둑길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젊은 층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산바람 물바람에 이끌려 친구들이나 가족단위, 또는 혼자서 발걸음을 옮긴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물결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핸드폰 소리가 분위기를 깨버린다. 특히 노년층에서 볼륨을 키워놓고 노랫가락이며 방송 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크게 불쾌감을 준다. 이어폰을 꽂고 걷는 젊은 층에게 이런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부끄럽기도 하다. 나이듦으로 인해 허술해진 자기관리와 느슨해지고 무뎌진 감각에서 생겨난 현상이려니 침묵하며 참아내지만, 도덕적 기준을 묵살한 인격까지 접어 헤아리기는 참으로 힘들다. 산에는 나무와 풀이 등을 기댈 수 있는 순리적 배려가 있듯이 더불어 공유하는 공간에는 최소한의 도덕적 바탕이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인식시켜준다.

인격 파탄의 무지가 용감함에 이르면 무모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 나라를 분노로 들끓게 만든 일본 총리 아베만 봐도 납득이 어려운 이해 불능이다. 그래서 그를 인격이 말살된 특종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는 DNA와 가문의 내력을 앞세워 갖가지 말로 합리화를 꾀하고 있지만 우리는 ‘보편타당한 판단력 부재’의 증오스럽도록 이기적인 언행을 인격 이하로 평가하며, 신뢰 같은 건 아예 모르는 걸로 여길 정도다. 우리에게 저질러온 모진 악행 앞에서도 수치심을 외면하고 오히려 ‘신뢰 없는 한국’이라는 말도 안 된 헛소리를 해대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아무리 첨예한 이해관계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덕적 인격은 지켜져야 하며, 이를 위해 스스로 돌아보고 내다보고 자정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즉흥적 단순판단화가 인격장애로 나타나면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모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음도 또한 자명하다. 생명과 인간존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성차원의 다독거림 시도가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도 모르고 있는 부정적 요인이나 독소 같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면서 해소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이 새삼 필요함을 느낀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회적 환경이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모두의 일상으로 가깝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람다움이 먼저여야 한다. 그리고 아주 작고 소소한 실천일지라도 인격은 참다운 신뢰와 맥락을 같이한 방정식임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 줌으로써 이웃이 함께 두루 평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