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들어가 며칠째 피를 뽑는다.
그래도 십 몇 년을 농약 안치고 농사를 지어온 논인데 이제 와서 피가 좀 많다고 제초제를 뿌려댈 수 없다는 결기로 손톱이 닳아져 피가 뺏죽거리도록 뽑고 또 뽑는다.
모를 심어놓은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지만 논은 여전히 뻘밭이어서 물장화를 신은 발을 빼서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힘이 든다.
그런데 이런 논에서, 게다가 7월 초의 땡볕 아래에서 하루 이틀도 아닌 여러 날을 헤매며 벌써 완강하게 뿌리를 내린 피를 모 찌듯이 뽑아 들어내는 일은 그야말로 안 해본 사람은 모를 정말 숨이 컥컥 막히는 중노동이다.
예전처럼 놉이라도 얻어서 함께 하면 덜 심란하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요즈음 시골에는 맨 노인들만 계셔서 이런 일을 같이 할 사람이 전혀 없다.
전통의 미덕으로 칭송받아온 품앗이도 없어진 지 오래다.
거기에다 지나는 이들마다 “아이고! 피 죽는 약 한 통 짊어지고 해불제, 언제 그 피를 다 뽑겄냐”, “나락금도 헐허디 헐헌디 뭣헐라고 그런 생고생을 애를 쓰고 하냐“는 둥 덕담(?)을 해대는 통에 더 심란하기만 하다.
모내기철 날이 가물었던 탓에 모를 심어놓고 물관리가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게으른 농사꾼임을 하늘이 알아보시고 고생 좀 해보라고 피 종자를 듬뿍 뿌려놓았는지 온 논이 그야말로 피가 천지다.
우렁이 농법으로 무농약 재배를 20년 가까이 해온 논에 왠 피가 이처럼 많아 보기는 정말 처음이다.
아마도 작년 가을에 여기 저기 몇 모가지가 보이던 피를 어찌어찌 해서 못 뽑고 그냥 추수를 했었다.
그런데 그때 떨어진 씨가 가뭄으로 온도까지 높았던 틈을 타서 논바닥이 높아 물에 충분히 잠기지 않은 곳에 있는 놈들은 다 싹이 터서 올라와 버린 모양이다.
또 이 피란 놈들은 생김새도 나락과 비슷한데다 어떤 놈들은 교묘하게 모포기에 까지 파고 들어앉아 얼른 보아서는 구별도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하여 이런 놈들을 여간 신경을 써서 뽑지 않고 대충 피사리를 했다가는 언제 뽑았냐는 듯이 도로 ‘피논’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는 추수를 하도록 수시로 논에 들어가 잔당(?)을 소탕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터이니 참말로 징한 노릇이기도 하다.
옛 어른들이 논에서 피를 한 모가지라도 보면 길을 가다가도, 다른 일을 하다가도 득달같이 논에 들어가 기어코 뽑아내곤 했던 이유를 농사꾼 노릇 40년이 다 되어서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어떻든 근래에 이런 저런 헛바람(?)이 들어 본업인 농사를 소홀히 하며 건달 농사꾼으로 살아온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정치판을 가만히 보노라면 거기에도 피가 천지박카리인 듯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대선 패배 이후 과거 국정농단세력과 한 패거리로 온갖 악행과 비리를 저질렀던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기는커녕 ,사사건건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안 되는 새 정부의 발목 잡기에만 골몰해 있다.
게다가, 그 언행이 가히 시정잡배 수준인 인사를 엊그제 다시 당 대표로 뽑는 등 여전히 국민을 무시하고 깔보는 자들이 우글거리는 그 곳에는 말할 것도 없이 나락보다 피가 훨씬 많다.
그런가 하면, 낡은(?) 정치판에 ‘새정치’를 외치며 혜성처럼 등장, 지난 총선에서 이 지역을 석권했던 했던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시기 문재인 후보의 아들과 관련된 의혹을 조작하는 ‘구태정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하여 요즘 그야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당의 존립기반조차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들 중 누구 하나 책임은 지지 않고 서로 발뺌만 하며 내놓은 ‘이 아무개’라는 여성당원의 생게망게한 단독범행이라는 당 차원의 조사결과 발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고 해괴한 짓인 것이 분명한데 찬찬히 보면 그 논(?)에도 피가 허벌나게 많다.
사람의 눈같이 게으른 것은 없다지만 뽑고 또 뽑아도 여전히 피가 그득한 나락밭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하다.
그러나 피 농사를 짓지 않으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서 나락 아닌 피는 가차 없이, 그리고 한 모가지라도 남김없이 다 뽑아내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가올 가을 들판의 풍성한 수확은 물론, 내년 농사에서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치판이라는 논도 마찬가지이다.

김성인 대표: 010.3607.0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