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더우 내 더우 가래 더우!”
우리 고장에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아침 일찍 다른 이에게 더위를 파는 다소 익살스런 풍속이 있다. 이렇게 더위를 팔아버리면 다가올 더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해가 뜨기 전에 팔아야 한다고 해서 아침 일찍 동무들 집을 찾아다니며 큰소리로 친구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자마자 더위를 팔곤 했는데 서로 더위를 사지 않으려고 누가 부르면 대답을 하지 않고 먼저 냉큼 더위를 팔아버리는 등 제법 눈치작전(?) 까지 했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아침 일찍 만나면 “아무개 양반 !” 아무개 댁!“하고 불러서 대답을 하면 ”니 더우 내 더우 가래 더우!“ 하고 가차 없이 더위를 팔아버리고는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웃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골에서도 대보름 명절을 쇠는 모습도, 정겹게 더위를 파는 모습도 보기가 어렵다.

정월 대보름 무렵이면 마을에서는 당산제나 걸궁(지신밟기)을 하여 마을민의 단합을 도모하고 국태민안과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대보름날 아침 신새벽에 우리 어머니들은 찰밥을 쪄서 장독대며, 부뚜막이며, 외양간이며, 뒤주 등에 두어 그곳에 깃들인 신들을 대접하고 가족들의 건강과 무사태평을 빌었다. 뿐만 아니라,정갈한 제수와 갖은 나물 등을 장만하여 찰밥과 함께 조상신들께 올리고 예를 갖춘 후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해우(김)에 찰밥을 싸서 먹고 부럼도 깨며 한 해 동안의 무사함을 소원했었다. 아이들은 불깡통이나 불 붙인 몽당빗자루 등을 들고 불싸움을 하기도 했고, 일년 간의 모든 액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둥근 보름달을 쳐다보며 정초부터 띄워 온 연을 불살랐다.

그런데 이런 소박하고도 정겨운 우리의 풍속들이 급속하게 산업사회로 달려와 버린 우리 사회에서 이제 차츰 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상업주의를 등에 업고 국적불명의 무슨 ‘데이“네 하는 것들이 우리 명절이나 민속들을 대신하여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실은 이렇게 이어온 소박한 우리 문화와 집단적인 신명이 암울한 식민지 시대와 참혹한 전쟁을 견디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온, 그리고 이 만큼의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달성한 힘의 원천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희대의 국정농단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뭇 혼돈스런 상황을 힘겹게 지나고 있다.

수십만 명이 훨씬 넘는 국민들이 비열하고 추잡한 부자들의 탐욕과,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들의 횡포를 청산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촛불을 들고 이 추운 겨울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거리로 나오고 있다.

헌법질서를 짓밟고, 나라를 망쳐놓은 친일, 독재세력 등 ‘온갖 잡것(?)들과 잡신들을 훨씬 물리쳐버리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한 나라,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고, 조국통일의 기운이 온누리에 충만해지는 ,그래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도 비로소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맞이할 희망으로 여름더위 먹지 않는 정유년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올 대보름날에도 우리 모두 힘껏 더위를 팔아보자.
“니 더우 내 더우 가래 더우!”

김성인 대표: 010.3607.0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