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좀비(zombie)들의 세계 차미례 언론인·번역가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2013년 09월 23일(월) 13:03

▲차미례 언론인·번역가

좀비(zombie)는 원래 서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신봉하던 신(神)으로 보통 '산송장'이나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이티 등 서인도제도에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로 소생시킨 이 시체들은 전 세계의 공포 괴담에 즐겨 나오며 세계화(?) 되었다. 완전히 마술사에게 지배되어 듣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는 좀비들은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밤에만 노예로 일하는데, 무거운 죄를 지은 인간이 그 형벌로 좀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인류는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는지 21세기의 세계는 좀비의 시대가 되었다. 대중문화비평가들이 말하는 트렌드만 좀비 시대인 것이 아니다. 정치판 역시 혼없는 좀비들의 살육판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지배층의 탐욕과 이들의 명령을 맹목 수행하는 집단들 간의 충돌은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지난해의 '아랍의 봄' 민중혁명이 무색하게 정치를 원점보다 더 지독한 혼란과 유혈 속으로 회귀시켰다. 어린이까지 무차별로 죽이는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즉각적 제재와 무력개입은 미뤄지고 있고 진상조사 조차 오리무중이다.

미국등 서방 강국들이 국익과 비용 따위를 따지며 투표와 여론조사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시신은 산을 이루고 피는 강물을 이룬다.

좀비 열풍이 대중문화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최초의 좀비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조지 A. 로메로 감독) 이후였다. 요컨대 좀비의 가장 큰 특징은 '혼(魂)없는 인간'이자 노예인 점이다. 느려터지게 걷는데다 썩은 시체의 외모인 좀비가 현재 TV드라마, 대자본 블록버스터 영화, 문학, 만화까지 휩쓸게 된 것은 헐리우드에서 좀비에게 전보다 빠른 다리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스피드 액션을 부여한 이후의 현상이다.

■'21세기의 특징, 좀비의 시대'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되고 좀비 바이러스, 치료 백신 등 다양한 기재를 동원한 영화와 TV극이 쏟아졌다. 좀비가 자본주의 사회의 몰락한 중산층집단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많았다. 미국 AMC드라마 '워킹 데드'의 최고 시청율이나 한국의 인기 웹튠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가 76화까지 연재되는 인기도를 보면 2013년식 발빠른 좀비의 창궐은 이미 붕괴된 중산층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몰락 단계에 이른 현실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정치판의 좀비들 역시 글로벌 대세에 뒤지지 않는다. 전 국민을 경악시킨 '80년대 좀비'의 양축은 전두환 정권당시의 '일부' 극단적 저항세력의 문법을 가진 '일부' 정치인의 내란음모세력과 30여년 만에 '내란음모죄'라는 무서운 칼을 뽑아든 국정원이다. 엄청난 공포대신 반신반의, 어처구니 없다는 국민의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2013년의 현실에 맞춰 업데이트 되지 못한게 분명하다. 양쪽 다 상부지시에 덩어리로 움직여 허점이 많다.

진보정당 내 내란음모사건과 관련, 정세 진척에 따라 말을 조금씩 바꾼 것은 전쟁불사, 파괴공작을 지시했다는 이석기 의원만이 아니라 모든 방송 뉴스가 그랬다. 처음엔 양비론에 가깝던 신중한 보도 태도를 바꾸어 어제부터는 이 의원이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선언에 때맞추어 거사하려 했다는 국정원 자료를 기정사실로 보도하며 '종북비판' 강도를 높였다. 배경화면으로 북한 군부의 담화영상을 등장시켜 아직 유죄가 미확정인 '내란음모자'들과 한몸인 듯한 인상을 강력하게 확산시켰다.

■'혁명'에 관련된 상반된 해석

그러나 주말인 30일 KBS 2TV가 'RO'란 단체가 지하혁명조직이라는 국정원발표를 보도하고 있을 때 1TV에서는 쿠바의 한인독립운동가 임천택 일가 4대에 관한 다큐를 내보내고 있었다. 멕시코이민 1세대인 그의 아홉자녀중 한 아들인 헤르니모 임(임은조)이 카스트로와 아바나법대 동기이며 절친한 혁명동지이자 체 게바라와도 친했다며 혁명가들의 초상들이 소개되는 장면에서 오히려 은근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사회주의 적성국가의 독립유공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건국훈장 추서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마당에 '혁명'기도 공안사건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운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 좀비현상이 아닌가.

치료법은 간단하다. 누구든 일단 국가의 막중한 책임있는 정치인이 된 뒤에는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혁명좀비와 결별하면 된다. 80년대식 투쟁보다 견실한 현실정치에 충실히 봉사하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40년전 내란음모죄 따위가 재연되는 광경을 보며 불안해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