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7월 17일(수) 10:38

얼마 전 완도에서 제주 가는 배 시간까지 남는 몇시간 동안 시내버스로 신지도의 명사십리 바닷가에 들려보았다. 완도 선착장은 인근의 많은 섬들과 선편이 연결되는데 굳이 다리가 놓인 신지도에 버스를 타고 간 것은 이 섬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세대차를 느낄 만큼 젊은 남자교수와 함께 방송관련 한 정부위원회에서 몇년 동안 주기적으로 회의 노동자로 일 한 적이 있었는데 기실 연구직과 시간 강사를 넘나드는 '고단한 일자리'임을 알게되었다. 그래도 뛰어난 논문을 여기저기 게재하고 의욕적인 연구와 저술활동을 펴는 등 '인재'라는 인상이 강했기에 그의 고향 신지도를 기억했는지도 모르겠다.

느닷없이 휴일에 전화를 걸어봤는데 그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읽고 쓰고 연구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임은 아니었고 우수한 젊은 학자에게 응당 돌아와야 할 '반듯한 교수직'은 아직도 먼 얘기인 듯했다. 이렇게 좋은 기운이 가득한 곳에서 태어났으니 실력있는 사람은 곧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박근혜식 격려를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내심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 풀어야만 잘 풀린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고용률 70%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려고 이름을 좋은 단어로 바꾸겠다는 발언을 하자 후속조치와 주요 정책 수단으로 "양질의 (시간제)일자리 창출"방안이 쏟아져 하반기 경제의 핵심과제가 되었다.

■대학교육의 절반을 시간강사가 담당

시간제 근로자 176만명이 평균 1년 내외만 근속하는 이유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고 수시로 파리목숨처럼 잘리는 데다 턱없이 낮은 보수 때문인 것을 고려하면 현실성 없는 소동만 같다.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는 10만3099명. 이들이 평균 4.2시간을 강의하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 연봉은 600만원 선이다. '대학 교수'라는 직업에 나름대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지만 시급5000원짜리 편의점 알바처럼 생계에 쫒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10여년을 어렵게 공부하고 학위를 따고 와도 갈 데가 없어 아예 취업을 포기한 사람도 많으니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만저만 낭비가 아니다.

교육부가 지난달 25일 공시한 172개 4년제 대학의 시간당 강사료는 평균 5만1000원이었다. 지난해 정부 가이드라인 7만원에도 한참 못미친다. 1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라도 방학을 포함해 한달 평균 115만원가량의 급여를 받는 셈이니 4인가족 최저생계비 154만원(2013년 기준)에도 못 미친다.

시간당 2만5000원짜리 대학도 있어 수십만원 급여에 자살자가 속출해 사회문제화 된 지 오래다. 이들은 마침내 올해 새해벽두부터 처우개선과 구조조정 중지, 2006년~2008년 네차례나 발의됐다가 국회에서 폐기된 강사법(고등교육법개정안)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전쟁'에 나섰다.

사실 시간강사제도가 생긴 건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에 비판적인 젊은 교수들을 대학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시간강사라는 시급제는 1962년, "강사는 교원에서 배제한다"는 조항이 법제화된 것은 1977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시간강사 문제를 "반듯하게" 바로잡고 대학강사가 시급 강의노동자가 아니라 본인이 시간제여부를 선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되게 일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빛나는 성취와 치적의 하나가 될 것이다.

■"창조경제"의 원천, '두뇌'부터 살려라

대학강사가 다른 시급노동자보다 더 대우받아야 한다는 차별적 편견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창조경제"의 개념이 안개 속에 있다가 최근 창조산업의 문화컨텐츠를 위해 전통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국정방향이 발표되지 않았는가.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대학이나 교수가 학생취업률로 평가받는, 상업화의 극치에 달한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소외된 강사들을 1960년대 이전의 정상적인 대학교원의 직위로 돌려놓아야 한다.

주차장에서 강의준비를 하는 유령들, 떠돌이 지성의 안정화야말로 반듯한, 양질의 일자리 마련의 단초가 될 상징적 작업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