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학교폭력과 자살’, 진짜 ‘근본 대책’을 아시나요? 화순교육․복지희망연대 공동대표 박세철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2013년 08월 06일(화) 08:48

2011년 12월, 같은 반 친구들이 상습적으로 가하는 잔인한 폭력과 고문에 시달리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 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친구들이 전깃줄로 목을 감아 개처럼 끌고 다녔다”는 내용을 포함해 모욕적인 가학행위와 물고문 등 충격적인 폭행 사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학교폭력’ 문제는 이 후에도 그 와 유사한 폭력과 자살이 잇따르면서 지금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학교폭력은 학교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범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2004년부터 시행되었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계획’ 등이 실효가 없었다는 비판과 함께 2013년 2월, ‘7대 실천대책(근본대책 3개)’하에 무려 23개에 이르는 세부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라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일부 학교들에서는 ‘폐쇄회로텔레비전(시시티브이)’를 설치하는가 하면, ‘배움터지킴이(스쿨폴리스)’도 배치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심지어 가해 학생에 대해 ‘학교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해 입시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을 가했지만 그러한 대증적 처방으로는 백약이 무효인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3월, 경북 경산에서 한 고교 신입생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5명의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집단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갈취 당하는가 하면, ‘빵셔틀’에 시달리기도 했고, 심지어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바지를 내리도록 강요받거나 샤워실에서 성추행까지 당하고 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만 아까운 생명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잔인해졌단 말인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러한 만행이 저질러졌는데도 피해 학생은 아무에게도 호소를 하지 못했고, 그 많은 학생들도 방관했으며, 교사들이나 학교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정부의 ‘4대 악’ 근절 정책이 추진되고 있던 와중에 발생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함께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의 대책은 가해자 처벌과 적발․신고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 완화되긴 했지만 입시 자료인 ‘학교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도록 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근본대책이라고 내놓은 ‘ 인성교육 강화’ 및 ‘가정과 사회의 역할 강화’ 같은 것들은 우리 사회와 교육의 현 위치에서 볼 때 실현되기는 요원한 것들이다.

감옥과 무장 경찰을 늘린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확충 등으로 복지를 강화하고 공정과 공존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룰 때 범죄가 줄어든다는 이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중요하다. 관행에 따른 반인권적 학생 통제를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거나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 즉 겉으로 드러난 반사회적 행동을 처벌하는 조항을 더 세밀하게 다듬는 식으로는 학교폭력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의 학교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자원과 비효율적 시스템으로 그 많은 대책들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간 영혼의 양면성을 지칭하는 ‘루시퍼 효과’를 발견했던 미국 스텐퍼드 대학 필립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교수는 1971년 ‘스텐퍼드 감옥 실험’이라는 충격적인 실험을 한다.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교도소 간수와 죄수 역할을 나누어 맡겼더니 진짜 간수와 죄수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더란다. 사람이 주어진 역할과 환경에 따라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하는 지를 잘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 논리를 우리 상황에 대입하면, 우리의 사회 환경과 교육환경을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바꾸지 않는 한, 대구 중학생 사건이나 경북의 고교생 사건에서 보듯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아이들도 어떤 상황에서는 아주 끔찍하게 변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살벌한 경쟁 속에서 오직 문제 푸는 기술만을 익히는 학교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특목고, 자사고, 일류대에 보냈는가로 학교의 교육력과 명성과 위신이 판가름되는 한, 제한된 인력과 자원을 가진 학교로서는 교육력의 대부분을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투여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방치하거나 사고나 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통제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잡무(?)’를 얹어줄 것이 아니라 그 나머지 학생들의 안전과 성장을 위해서도 학교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사 정원’도 늘리고 ‘전문상담교사’와 ‘사회복지사’도 배치해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협력하여 우리의 교육을 둘러싼 제도와 문화 전반을 ‘성적․학벌․돈’보다는 ‘생명․사람․인격’이 소중한 세상으로 거듭나도록 더디더라도 꾸준히 손질해 가야 한다.

*인용 : 김상곤, ‘김상곤의 교육편지’, 한겨레출판, 2012
한겨레신문 사설, ‘학교폭력 문제, 교육의 힘으로 풀자’, 201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