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美學 …"내가 기다려줄 때 남도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박하은 기자 hoahn01@hanmail.net

2013년 01월 14일(월) 18:58

▲ 장종운 소장

주위를 돌아다보면 생활 그 자체가 온통 “빨리 빨리”이다. 우리들은 이런 조급한 현상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만큼 익숙해졌다는 의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그리 급하고 바쁜지 방금 일을 시켜놓고 뒤돌아서서 다 되었냐는 식이다. 짜장면을 주문해 놓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오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애한테 중학교 방정식도 못 푸느냐고 닦달한다. 기면 걷고 싶고, 뛰면 날고 싶다고 한다. 세상일은 급하게 할 일도 많지만 느긋이 처리해야 할 때도 많다.

모든 일을 서두른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뜸을 잘 들여야 맛있는 밥이 되고, 열 달을 채워야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 재촉해서 나온 결과는 부실하기 마련이다. 세계의 석학도 기역(ㄱ), 니은(ㄴ)부터 배워야 하고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재판의 진행 절차를 살펴보자. 우선 원고가 소장을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면 한 두달 정도 서면에 의한 답변서와 준비서면의 공방절차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서 변론기일이 잡히는데 변론기일은 2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은 1회로 종결되지만 다툼있는 사건이나 단독사건 이상의 사건은 수차례 열리게 된다.

변론기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기 때문에 변론기일 1회당 한 달이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몇 차례의 변론이 열린 다음 판사가 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을 선고한다. 판결이 난 뒤에도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으면 재산명시나 재산조회신청을 통하여 상대방의 재산을 찾아 경매를 시켜야 한다.

경매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유체동산의 경우에는 서너 달, 부동산의 경우에는 1년 이상 소요된다. 요컨대 판결을 받는데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석 달 이상 잡아야 하고, 경매를 시키는 데는 1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단에 찾아온 분들은 마음이 급하다. 소장도 내기 전에 언제 판결이 나오느냐, 재산명시신청도 하기 전에 언제 재산을 찾을 수 있느냐, 경매를 신청하기도 전에 언제 배당이 이루어지느냐고 물어보며 안달해 한다.

사건에 따라서는 서둘러서 될 일도 있지만 지나치게 서둘러서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다. 특히 상대방에게 재산이 없거나 재산이 있어도 섣불리 건드려 재산을 빼돌릴 기회를 주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채권회수가 도저히 불가한 사안인데도 내용증명만 툭툭 보내면서 기다리는 분들 중에는 우연찮게 채권을 회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사례는 가끔이라기 보다는 자주 있는 현상이다. 안달을 한다고 해서, 소송을 서두른다고 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에 대해서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만 압박을 가해야 채권회수의 길이 보이지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버리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파산이나 회생을 검토하게 된다. 파산이나 회생절차에서 법원의 인가가 떨어지면 채권의 전부나 일부를 영원히 회수할 수 없게 된다. 긁어서 부스럼 낸다고 한다. 가렵더라도 느긋이 참고 기다려야 딱쟁이가 지고 상처가 아물게 된다.

배우자가 바람피운다고 증거를 잡기 위해 안달해 하면서 뒤를 밟고 채근하면 절대로 증거를 잡을 수 없다. 그저 인내하고 방치해 두면서 내버려둬야 날 잡아가쇼 하면서 증거를 남기게 되는 법이다. 설친다고 해서, 서두른다고 해서 증거가 잡히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라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서두를 것은 서두르되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면 차분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타의 법률문제의 해법도 이와 같이 접근해야 한다. 판결을 받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를 현금화시켜 채권을 회수하는 절차가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이다. 상대방에게 재산이 있으면 모르되 숟가락 몇 개 있는 정도라면 몇 년이고 기다려 보았다가 불시에 재산을 찾아 집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판결을 받아 두면 시효가 10년 연장되고 그 사이에 채권을 회수되지 못하면 몇 번이라도 판결을 다시 받아 시효를 연장시킬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대다수의 문제에 대한 해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가 빨리 크지 않는다고 매일 고기에 고칼로리의 음식만 먹이면 당장 키는 클지 모르지만 비만에 각종 성인병으로 후유증을 앓게 된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고액 과외에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책만 붙들게 하면 성적은 조금 오를지 몰라도 몸을 망치게 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차근차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나와 고객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서, 남편과 부인 문제 등에 있어서도 항시 기다려줄지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기다려줄 때 남도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장종운: 010-7618-2959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률전문상담관․법원조정위원․법서작가

<컬럼 필진>
1. 김창호 화순리조트 대표, 2. 장종운 법률구조공단소장, 3. 송윤선 다문화센터장, 4. 박세철 교육복지연대회장, 5. 문종안 새누리당 전국상임위원, 6. 송태평 축협조합장, 7. 홍기평 성균관부관장, 8. 윤평순 농협군지부장, 9. 임대원 효원통증의학과의원, 10. 염낙귀 세무사, 11.이다경 청소년상담지원센터장, 12. 배동기 화순군 총상가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