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념보다 정치행태가 중요하다 국회의원 김부겸 김부겸 기자 hoahn01@hanmail.net

2011년 05월 11일(수) 11:28

우리 국민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자 할 때, 정치노선이나 정책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의 말이나 행위, 행태까지 모든 걸 두루 본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의 됨됨이가 미덥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표를 주지 않는 게 바로 국민들입니다. 그래서 정치인에겐 일거수일투족이 중요합니다.

최근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 온 우리 민주당이 마침내 정권 교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정권 교체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세 단어로 굳이 표현해보라면 ‘겸손, 통합,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국민을 대하는 자세를 말하며, 통합은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전국정당의 완성을 뜻합니다. 전략은 국가 운영 전략을 말하는데 그것은 복지국가라고 이미 제시되어 있습니다.

정치에서의 ‘예의 없음’

저는 이 중에서 겸손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에 아직 겸손이 부족합니다. 겸손은 ‘예의 없음’의 반대말입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국민들이 민주당을 싫어하고 못 믿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입니다.

예의라는 단어가 좀 무거워서 흔히들 ‘싸가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야당도 아닌 10년간의 집권여당 시절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의 없음’이 정치에서는 오만하다, 독선적이다 하는 뜻도 포함됩니다.

진보주의가 원래부터 기성 체제를 비판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다보니 언술이 공격적입니다. 심지어 말과 글을 차갑고 독하고 신랄하게 하면 할수록 주목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보진영이라면 으레 좀 무서운, 늘 화가 나 있는,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인식마저 생겼습니다.

‘싸가지’ 없다는 소리와 함께 처음엔 언론, 그 다음엔 지식인, 또 그 다음엔 사회의 중견에 해당하는 40~50대들이 돌아섰습니다. 그러더니 일반 국민까지도 고개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들이야 원래 보수의 아성이라 그렇거니 했고, 지식인 중에도 기득권화된 인사 일부가 그렇다고 치부했습니다. 다시 40~50대는 그악스런 보수 언론의 악선전 탓이라 보았고, 국민 대다수가 차갑게 돌아섰을 땐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팍팍한 나머지 국정 책임 세력에 쏟아내는 원망의 표현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집권 10년을 돌아볼 때 이념과 경제가 문제였다는 평가가 거의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이념에서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실패했다는 평가와 오히려 불철저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입장에 따라서 달리 나오고 있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엔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경제에서는 어설픈 좌파들이 집권하면서 기업과 시장을 적대시하는 바람에 성장정책에서 실패했다는 논자와, 외형적 수치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서민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 것이 없다는 분배의 실패를 지적하는 논자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그 역시 정답이 무엇인지 가리기 힘들어집니다.

오직 이해관계의 차이와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황의 차이입니다. 복지정책의 폐해와 재정적자가 심해지면 신자유주의 같은 보수주의가 강해지고, 실업과 빈곤이 심화되고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면 진보주의가 득세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표방한 정치체제 하에서 모든 정당은 기본 입장 혹은 이념의 차이가 기본적으로 유지되는 가운데, 정책에서 약간씩 좌 또는 우로 옮겨 다니는 정도지 전쟁, 혁명, 대공황 같은 역사적 사건이 없는 한 솔직히 거기서 거기입니다.

내부투쟁의 수단이 된 이념

오히려 이념은 정치투쟁을 하는 데 흔히 이용됩니다. 그것도 외부보다는 내부자를 상대로 한 투쟁에 많이 쓰입니다. 진보가 보수더러 ‘너는 보수주의자야!’라는 건, 욕이 못 됩니다. 같은 진보파 내부에서 ‘넌 보수야!’라고 할 때 그게 욕이 됩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 주로 싸울 때 보면 이념이나 노선을 많이 들먹이곤 합니다.

이념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유주의 정당의 성격을 버릴 수 없는 민주당 내부 구성원 간의 이념 차이라고 해봤자 제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당 안에서조차 이념의 차이를 들어 상대방을 공격하려 듭니다.

적어도 당 안에서 우리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자세나 태도, 즉 정치행태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 타인에 대한 태도, 정치적 반대자와 경쟁자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지 않으면 국민들은 여전히 우리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최근 덕(德)보다 재(材)가 승하다는 어떤 정치인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민주당도 과히 다르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눈에 그 분과 우리 민주당이 크게 다를 것 같습니까?

저는 우리 한국 정치가 이념과 정책 면에서 영국이나 미국 정치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 봅니다. 그런데 정치 행태를 놓고 보면 한참 부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 통합성이 약화되면서 어디랄 것 없이 여야 간 정쟁이 격화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여당은 일방통행, 야당은 무조건 반대로 나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싸우는 게 정치의 전부인 한, 예의고 겸손이고 딛고 설 땅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Bipartisanship(초당파성)’이란 단어가 가장 더러운 욕(Dirty word)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하나의 미국’을 주창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정도로 분열과 갈등을 걱정하는 국민적 인식도 있고, 그걸 치유하겠다는 오바마나 맥케인 같은 지도자가 나왔습니다.

정치행태가 더 문제다

우리는 진보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동시에 진보정당과의 정책연합, 나아가 선거연합을 해야 합니다.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를 국가전략으로 천명함으로써 가치에서의 진보는 기정사실화했습니다. 거기다 진보정당과의 연합정치를 실현하려고 순천(順天) 무공천도 했습니다. 정당 정치에서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전무후무한 일까지 하면서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제1야당입니다. 따라서 중도층을 잡지 않고서 집권할 수 없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분당 보권선거에 당 대표까지 내보내면서 승부를 걸었던 것 아닙니까? 순천을 양보해 진보와 연대하고, 분당에 당 대표를 내보내 중도에게 다가가는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고, 만날 노선 시비만 하면 우리끼리 뭘 어쩌자는 겁니까?

민주당의 두 가지 과제를 엄연히 알고 있으면서 이념을 들어 경쟁자를 때리고 정체성을 운운하며 당내 투쟁을 시도하는 일이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망했습니다. 그런 정치 행태 때문에 국민들이 민주당의 이미지를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 더 열심인 당, 그래서 늘 불안한 당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교만 때문에 신나할 곳은 보수 언론이요, 즐거워 할 곳은 한나라당입니다.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두었으면 합니다.

보수를 이기기 위해, ‘진’보와 ‘중’도를 묶어 ‘권’력을 쟁취하자는 ‘진중권 정치’를 구가하는 시점에 누가 더 진보적인가로 경쟁하자는 건 뒷북치기 아니면 얄팍한 영합입니다. 이념이나 노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당 내부에서 치고받는 것이 지금 국민들이 민주당에 바라는 모습은 아닙니다. 늘 민주당에 차고 넘치는 것은 이념이고, 찾아보기 힘든 것은 예의를 갖춘 정치행태입니다. 정권교체를 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정치행태부터 바꿔야 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조롱당하고, 민생에 무능했다고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야당이 된 뒤, 두 분 대통령이 안타깝게 돌아가셨습니다. 이 치욕과 고통을 씻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더 바뀌어야 합니다. 더 겸허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