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

송강의 생애와 담양
바캉스 철이다. 방학을 맞아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의 성화에 시달리는 부모들은 지루한 장마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아이들을 어떻게하면 유익하고 보람 있는 생활로 건강하게 이끌 수 있을까? 지인들로부터 이런 문의를 종종 받곤 한다.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자녀들이 정자문화와 풍류문학을 배울 수 있는 광주호의 송강 정철의 문학기행 코스는 행선지를 두고 망설이는 부모들에게 하루 동안의 나들이 코스로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정철은 1536년 (중종31)음력 12월 6일에 현재 서울 자하문 밖인 장의동에서 영일정씨(迎日 鄭氏) 유침(維沈)과 죽산안씨(竹山安氏)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함(季涵) 태어날 당시 부친은 돈령부 판관이었고 위로는 자(滋), 소(沼), 황(滉) 세형과 두 누이가 있었다.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인 숙의였고, 작은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유의 부인이었다. 정철은 철부지 소년시절에 누나들을 만나러 대궐에 들어가 노상 살다시피 했다. 대궐에 들어가서는 세자(인종)의 이복동생인 두 살 아래인 경원대군(慶原大君)의 소꿉놀이 동무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도 철없이 즐겁기만 하던 어린 시절은 어느새 흘러가버리고 1545년 중종이 재위 39년만에 세상을 뜨고 세자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갑자기 위독하여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몰려주자 불과 여덟 살짜리 경원대군이 즉위하니 곧 명종이다. 그해에 정철은 열 살이었다. 임금이 철부지 어린아이였으므로 모친인 중종의 제2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을 하고 정권은 오라비인 윤원형(尹元衡)일파 즉 소윤(小尹)에게 돌아갔다. 이때 소윤이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오라비인 윤임(尹任)일파, 즉 대윤들을 숙청한 사건이 바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이다.

이러한 정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정철의 집안도 풍비박산이 났다. 그것은 매형 계림군이 역적으로 모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형은 야반도주를 하여 함경도 안변 황룡산에 잠적하였다. 그 때 아버지는 시온령, 맏형 자는 이조정랑이었는데 죄인의 장인이요, 처남이라해서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계림군이 도망쳐 숨은 곳을 대라는 것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부자가 함께 매질을 당하는데 계림군이 결국 붙잡혀 왔다. 고문 끝에 계림군은 없는 죄를 자백하고 능지처참을 당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으로, 형은 전라도 광양으로 귀양을 갔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인 1547년(명종 2)가을 지금의 양재동에 문정왕후와 소윤일파를 욕하는 괘서(요즘 대자보)가 나붙어 또 한 차례 피바람이 몰아쳤다.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귀양 가는데 송강의 아버지도 다시 붙잡혀 이번에는 경상도 영일로, 그때까지 광양에서 귀양살이 하던 맏형은 함경도 경원으로 끌려갔다. 정철은 어린 시절을 이처럼 귀양살이하는 아버지를 따라 북쪽변방으로 남녘 끝으로 유랑하듯 오르내리면서 보내야 했다. 어쩌면 그의 가열 찬 성격은 이때 형성이 되었던 것이 아닌지 모른다.

아버지가 풀려난 것은 1551년(명종 6)명종이 원자(元子)인 순희세자(順懷世子)가 태어나자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맏형 자는 이미 유배도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고 없었다. 그 해에 정철의 나이 16세였다. 벼슬길과 서울 살이에 환멸을 느낀 부친은 식솔을 죄다 이끌고 전라도 담양 땅 창평(昌平)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광주에서 동북쪽으로 17km 떨어진 창평은 정철의 큰아버지 정유심(鄭維深)이 남원부사를 지낸 뒤 이곳 원강리(院江里)에 들어와 아이들의 글을 가르치며 살다가 뒷날 부친의 산소를 모시고 자신도 사후에 묻힌 곳이다.

담양 가사문학관

좋은 환경과 교육은 사람을 바꾼다.
이곳에서 정철은 나주목사를 지낸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의 눈에 들어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뒤에는 그의 외손자 사위가 되었다. 즉 정철은 김윤제의 사위인 문화유씨(文化柳氏) 강항(姜項)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던 것이다.

김윤제는 임진왜란 때 유명한 의병대장 김덕령(金德齡)의 종조부로서 그가 환벽당(環碧堂)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던 환벽리는 현재 김덕령의 고향 석저촌과 함께 광주 북구 충효동이다. 정철은 김윤제의 조카뻘이며 정철에게는 11세 연상의 처 외당숙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과 함께 김윤제에게 글을 배우고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어 기대승의 스승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화순이양의 양팽손의 아들인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한테서도 학문을 익혔다. 또한 시는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에게서 배우게 된다. 이들 모두가 당대 뛰어난 학자요, 문장가요, 시인이며 인품이 뛰어난 일세의 풍류 고사들이다.

정철이 별뫼 앞을 흐르는 맑은 시내의 이름을 따서 송강(松江)이란 호를 지은 것이 그 무렵이었고 율곡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등과 교분을 맺은 것도 그때였다. 16세부터 26세에 과거를 보기까지 10년간을 송강은 이렇게 경치 좋은 산수(山水)간에 학문을 닦고 시를 공부하며 꿈 많은 청년기를 보낸 것이다.

강직한 성격에 술을 너무나 좋아해
송강의 성격은 강직하여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여서 옳지 않은 일을 보면 반드시 지적해야 직성이 풀렸고 허물이 있으면 비록 절친한 친구든 벼슬이 높은 권력자든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임금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했고 사사로운 부탁은 임금의 부탁이라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런 융통성 없는 가열한 성품은 결국 많은 적을 만들어 뒷날 불같은 화를 불러오게 된다. 송강은 또 술을 즐겨 죽을 때까지 끊지 못했다. ‘술을 줄이고 말을 삼가라’는 율곡의 충고를 들을 만큼 술 때문에 실수도 많았고 일화도 많이 남겼다. 근무 중인 대 낮에 술이 취해 사모가 삐뚜름하게 기울어진 적도 있었다. 뒷날 선조가 은잔을 하사하며 “하루에 이 잔으로 한잔만 마시라”고 하자 술잔을 두들겨 사발만큼 크게 늘려 마시기도 했다. 이 잔은 지금 송강사를 관리하는 종손이 보관하고 있다.

식영정. 정철이 머물던 정자로 성산별곡의 창작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1575년(선조 8) 정철이 모친의 3년상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나아가 성균관 사성을 맡았을 때에는 이미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당파싸움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뒤였다. 서인에 속했던 송강은 율곡과 합세해 동인의 기세를 온전히 꺽어 붕당을 없애고자 하나 온건 중도파인 율곡은 송강의 강경책을 반대했다. 이에 송강이 벼슬을 버리고 창평으로 내려가고 율곡도 수습책이 실패하자 강릉으로 낙향하니 조정은 東人들의 천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송강은 임금이 불러 여러 차례 벼슬을 맡겼지만 그때마다 동인의 벌떼 같은 탄핵을 당해 출사와 낙향을 무려 14년간이나 되풀이 했다. 송강이 다시 벼슬길에 나아간 것은 1580년(선조 13)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어서였다. 동인의 끈길긴 탄핵에도 감싸주는 선조 임금의 호의를 더 이상 마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리에 방면을 맡기시니 어화 성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이렇게 시작되는 〈관동별곡〉은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원주감영에 부임한 뒤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을 속속들이 돌아보고 산수와 고사 풍속과 인정들을 읊은 송강가사 중 가장 긴 작품이다.〈관동별곡〉은 선경을 소요하는 풍류가객 송강의 면모가 관통하는 듯 특히 해금강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글은 압권이 아닐 수 없다.

명사(鳴沙) 길 니근말이 취선(醉仙)을 비끼 실어/ 바람결에 두고 해당화로 들어가니/ 백구야 나디마라 네 벗인지 어찌 아난.

참으로 신기절묘의 극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강릉 경포대 경내에 1977년에 세운〈관동별곡〉시비가 있다. 4년 뒤에 송강은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동인들의 탄핵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심지어는 술 때문에 실수한 일까지 트집을 잡고 ‘성격이 편협하고 감정에 치우쳐 매사를 그르치는 인물’이라며 조정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참소했다.

그때마다 선조는 송강을 두둔하며 “정철이 술 좋아하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술 마시는 것까지 시비 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하고 “정철은 바르고 곧은 사람이다. 단지 바른말을 잘 해서 미움을 살뿐이다.”라고 편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아끼던 말까지 하사하니 사람들이 송강을 가리켜 ‘총마어사’(驄馬御使) 라고 불렀다. 선조 18년 동갑이던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송강도 조정을 물러나 고양을 거쳐 담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후 4년간 전원에 은둔,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시 짓기에만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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