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남(56) 능주면 만인리 이장

본지에서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지역의 최 일선에서 지역주민과 자치 단체의 중계 역할을 하며 마을의 사소한 일부터 주민 숙원사업까지, 생활 속 어려움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노력하고 있는 이장들의 노고를 알리고 그 마을의 자랑과 어려움을 들어보고자 우리 동네 이장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마흔 여섯 번째로 능주면 만인리 구경남 이장을 만나 보았다. <편집자 주>

◆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짧지만 여운이 긴 시골 여행을 해 보려 한다. 먼저 화순읍에서 능주방면의 버스를 아무거나 골라 탄다. 그렇게 가만히 몇 분을 달리다보면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가 보이고 멋진 가로수 길을 지나면 농업기술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작은 초등학교 앞을 지날 것이다. 그때 잽싸게 벨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그런 다음 마을의 통로인 굴다리를 지나 앞만 보고 하염없이 걷다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69호 160여 명의 주민들이 알콩달콩 살고 있는 만인리 마을 중심에 도달한다.

만인리를 상징하는 표지석과 마을로 통하는 굴다리

◆ 마을의 유래
만인리(萬仁里)의 지명은 만세동(萬世洞)마을의 만(萬)자와 인량동(仁良洞)마을의 인(仁)자를 각각 취하여 만인리라 하였으며 인량동마을, 만세동(새터골)마을 등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인량동마을은 예전 이곳에 인량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그 이름을 취하여 인량동이라 하였고 마을을 세분하면 우데미, 아래데미로 구분된다. 만세동마을은 처음에 인량사라는 절이 있어 절굴이라 부르다 후에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새터라 불렀고 지금은 만세동이라 부른다. 만세동은 만년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 고요속의 외침
굴다리를 지나 마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의 느낌은 고요하다. 하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주민들의 일하는 모습에선 생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그냥 찾기는 쉽지 않다. 다들 허리를 반쯤 숙이고 있거나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물찾기 하듯 군데군데 숨어 있는 주민들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학창시절에 보물을 한 번도 찾지 못한 것데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오늘 몇 개를 찾았다.

어때요? 보물을 찾으셨나요?

또 큰 보물 하나를 발견했다. 회관 앞을 대빗자루로 열심히 쓸고 있는 한 여인. 멀리서도 빛이 나는 걸로 봐선 4년째 이 마을 살림을 꾸린다는 구경남 이장이 틀림없다. 가까이 다가가자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웃음으로 맞아 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회관으로 모이기 시작 하는데...

손님이 온다는 말에 한창 밭에서 일하다가 잠시 일손을 놓고 왔다는 주민들. 바쁜 농사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길게 갈 틈도 없이 회관 안에 둘러앉은 주민들은 요사이 잠깐 마을을 비운 이장 얼굴을 보자마자 하나같이 마을 얘기부터 꺼내고 고된 일을 한 몸에게 상이라도 주듯 자연스럽게 소주 한병이 나온다. 마을 이야기를 안주삼아 절대 과하지 않게 딱 한 잔씩만 들이켜 주는 센스까지 갖춘 주민들. 왁자지껄 주고받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노라면 ‘아~ 이런 게 사람 사는 거구나’란걸 느낄 수 있다.

한번 마을 얘기가 터지면 중간에 껴들어가기가 힘들 정도다

◆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만인리 마을만의 전통이 하나 있다. 농한기를 이용해서 마을 공동으로 유과를 만들어 구정 때 판매하는 것이다. 한 어르신은 “내가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7년 됐는디 그 전부터 계속 해 왔당께 상당히 오래 됐제”라며 그 전통 있음을 확인 시켜 줬다. 매년 하는 작업이지만 이번에는 1년에 한번 여자 이장 1명에게 주는 이장부업사업 지원금으로 유과를 만들었다. 구경남 이장은 유과 생산을 위해 9일 밤을 새고 눈에 기름이 튀는 것도 감수했으며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결코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란다. 어렵게 얻은 수익금인 만큼 일부는 마을기금으로 쓰고 또 (재)화순장학회에 백만원을 기부하는 등 보람있게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보고 한편에선 도대체 얼마나 벌기에 그 큰돈을 기부하냐는 사람도 있는데 액수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단다. 농한기 한철 잠깐 하는 작업으로 비록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작업한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져서 좋은 일도 할 수 있었다며 만인리 주민 모두를 칭찬했다.

이렇게 마을 전통도 이어나가고 좋은 곳에 기부도 할 수 있었던 건 마을 주민들의 부지런함 때문이다. 이 마을 주민 대다수는 새벽 4, 5시만 되면 산이나 들에서 캔 쑥, 냉이, 미나리, 고사리, 취나물, 약초 등을 가지고 어김없이 남광주 시장으로 나간다. 무릎도 아프고 몸이 성한 곳이 없긴 하지만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일도 없고 손자들한테 용돈까지 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광주까지 나가는 버스가 없어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군에 건의를 했고 그 결과 하루에 세 번 마을에 버스가 곧 들어오게 됐다며 수고해준 관계자들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집안 살림하듯 마을일을 보면...
여자이장이며 주부이기에 아무래도 마을 일에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게 되고 또 주민들도 남자이장보다는 더 편하게 마을 일을 의논한다. 그렇게 주부의 눈으로 마을 일을 보다 보면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회관 안에는 넓게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 많은데 딱히 정리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동식 창고라도 마련되어 한정된 공간을 더 넓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식 창고가 생겼으면 하는 회관 옆 자리

◆ 긴 여운을 뒤로하며
만인리 마을 주민들은 한창 꽃이 만발할 4월 초 삼천포로 바람을 쐬러 갈 계획이다. 여느 지역마다 있는 흔한 마을 행사이긴 하지만 주민들은 조금 들떠 있다. 아마 누구보다 열심히 한 고된 농사일 뒤의 꿀 맛 같은 휴식이라 기대되고 사랑하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값진 여행이라 더 그러지 않나 싶다. 일을 하든 놀이를 하든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만인리 주민들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조용한 분위기의 다른 시골 마을보다 젊은 사람도 많고 그래서인지 더 밝고 활기가 넘치는 마을. 여태껏 그래왔듯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간에 하나에서 열까지 서로 의논 한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마을이라 기대된다.

고된 농사일 중에 피로를 푸는 술 한 잔! 딱 한잔만 들이켜주는 센스~!

항상 활기 넘치는 우리 칠공주들~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무 위의 주인들도 곧 찾아오리라

인터뷰에 응해준 구경남 이장과 마을 주민에게 감사드린다.

구경남 011-601-8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