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시권(67) 도암면 지월리 2구 이장

본지에서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지역의 최 일선에서 지역주민과 자치 단체의 중계 역할을 하며 마을의 사소한 일부터 주민 숙원사업까지, 생활 속 어려움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노력하고 있는 이장들의 노고를 알리고 그 마을의 자랑과 어려움을 들어보고자 우리 동네 이장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서른 한 번째로 도암면 지월리 2구 형시권 이장을 만나 보았다.<편집자 주>

추수를 마치고 찾아온 잠시의 한가로움에 농부들의 정담이 퍼져가는 늦가을. 낮은 나락 값과 판로 걱정은 한잔 두잔 들이키는 탁주 속에 털어 넣고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주 삼아 기분 좋게 취해 간다. 이웃지간인 형님, 동생, 아제 등이 친자식보다 더 위로가 돼주니 지친 농심이 그제서야 사르르 펴지고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잔치나 다름없게 되니 오늘만큼은 그저 흠뻑 취해보고 싶어진다.

가을걷이로 텅 빈 들판을 스쳐가며 찾아 가는 도암면 지월리 2구 가는 길은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농부들의 모습으로 인해 더 없이 아늑하게 다가오기만 한다. 오랜 길동무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시나브로 젖어 갈 때쯤 도암면소재지에서 운주사 방면으로 가는 길 오른편으로 아담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느 농촌처럼 평화롭고 소박한 마을, 40여 세대 180여명이 도란도란 둥지를 틀고 있는 지월리 2구 월전 마을. 찾아온 거리만큼이나 반가움이 더 한다.

마을의 유래
도암면 지월리(池月里)는 지장(池庄)마을의 지(池)자와 월전(月田)마을의 월(月)자를 취하여 지월리라 하였고 지장마을, 월전마을, 탄곡마을 등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전마을은 원래 능성현에 동창과 서창이 있을 때 서창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옛 문헌에는 창저(倉底 : 서창 밑의 마을)로 기록돼 있다.

서창은 이 지역 주변의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로 정천천에 바닷물이 유입되었을 조선 초기까지 거두워진 주세는 이곳을 통해 영산창으로 보내졌다. 이후 서창은 폐쇄되고 마을은 월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장면과 호암면을 통합하여 도암면이 되면서 지월리로 편입되었다.

마을의 대표 지식인! 형시권 이장님
형 이장은 원래 지월리 탄곡 마을이 고향으로 그곳에서 수년 동안 이장 일을 해오다 20여년 전에 지금의 월전 마을로 옮겨 1년 전부터 다시 이장을 맡아 마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중앙대 대학원 지방의회 과정을 수료했을 만큼 배움의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젊어서는 예술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한 때 정치계의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수확 없이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첫발을 내딛던 1991년에 군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던 것. 소외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고 힘없는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대변인이 되고자 했지만 인생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다.

“다 제 덕이 부족했던 탓이지요. 그런데 꿈이란 것이 세월 따라 변해가는 것이더군요. 젊어서야 이런 저런 바람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마을 어르신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입니다.”

도암면 지월리 2구 월전마을 전경. 뒤로 보이는 대나무숲은 과거 주민들이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는 요긴한 재료였다.

우리 마을의 자랑!
월전 마을은 겨울철 별미 중의 별미인 대봉과 햇볕에 잘 말린 청정 고추로 이름이 나 있다. 벼농사가 큰 재미를 못보고 있는 실정에서 마을 오른편 골짜기인 백석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100% 자연산 태양 볕을 쬐고 자란 이들은 마을의 주 소득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 인근 운주사를 다녀가는 관광객들이 길을 멈추고 한번쯤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주 여건이 뛰어나 다른 마을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심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 법. 월전 마을에 흐르는 따뜻한 정이야 말로 이 마을 최고의 자랑거리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형 이장의 바람
형 이장은 평소 누구보다 마을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막상 이장을 맡게 되자 모든 일이 녹녹치만은 않았다. 마을을 위한 마음의 만분의 일이라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고령화에 따른 주민들의 노쇠가 사사건건 형 이장의 발목을 잡은 것.

지난해 월전 마을을 포함해 6개의 마을이 농촌개발사업 지역에 해당돼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지원사업비의 20%를 마을 자부담으로 충당해야 하는 조건이 결국 사업포기에까지 이르게 했다.

“1억 여원이 넘는 금액을 우리 마을에서 부담해야 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연로하다 보니 본인들의 주머니를 털어서까지 새로운 일을 벌이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마을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만 사업이 이루어 졌는데 젊은이들만 있었으면 힘을 받고 추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여름이면 마을 오른편 골짜기 백석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주민들의 쉼터가 되주는 마을 정각

형 이장은 군청이나 의회에서 젊은 인력들이 농촌에 쉽게 귀농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진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의 학구제를 과감하게 뜯어 고쳐 농촌에서도 어디든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게 하고 귀농자들이 기반을 잡을 때까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형 이장의 설명이다.

맺음 이야기
수려한 산수와 넉넉한 인심이 가득한 지월리 2구 월전마을. 그러나 여느 농촌 마을이 그렇듯 자취를 감춰버린 젊은 인력들은 마을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앞서 형시권 이장의 말처럼 고령화로 인해 힘을 잃어 가고 있는 농촌에 있어 젊은 피의 수혈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가난은 국가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에 빗대어 떠나는 젊은이들을 무슨 수로 잡겠냐며 뒷짐지고 있는다는 것은 행정 관청의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귀농자들이 정착할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정책이야 말로 월전마을을 포함한 다른 농촌 마을에 있어 가장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형시권 이장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준 박오동(76) 노인회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형시권 이장 010_8919_9981

월전 마을 회관 겸 노인정. 지난해 군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 낡았던 건물을 새단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