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면 정천리 박현재(60) 이장

본지에서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지역의 최 일선에서 지역주민과 자치 단체의 중계 역할을 하며 마을의 사소한 일부터 주민 숙원사업까지, 생활 속 어려움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노력하고 있는 이장들의 노고를 알리고 그 마을의 자랑과 어려움을 들어보고자 우리 동네 이장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스물 두 번째로 도암면 정천리 박현재 이장을 만나 보았다.<편집자 주>

바쁜 농촌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8월 하순, 도암면 정천리의 풍경은 여느 농촌의 마을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당산나무를 이고 있는 마을 전각에서는 박현재 이장과 주민들이 모여 한결 선선해진 바람을 쐬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우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마을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시원함을 자아낸다.

도암면 정천리는 화순읍으로부터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 단일 마을이다. 한창일 때는 140호에 600여명이 살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74가구 150여명 정도가 오붓하게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밀양 박 씨 성으로 이루어진 정천 마을은 윗집은 형님, 아랫집은 동생, 옆집은 아제 등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어 유대관계가 어느 마을보다 돈독하다고 한다.

또한 예부터 유교사상이 강해 지금도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를 가진 이가 드물다고 하니 이는 조상과 주위 사람들을 최고의 믿음으로 여기는 마을주민들의 몸에 밴 삶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다. 동쪽으로는 조락산과 북쪽으로는 매산들이 자리 잡고 있고 서쪽은 강산봉이 남쪽에는 천태초등학교가 접하고 있는 정천 마을은 그래서인지 더 정감 있게 다가왔다.

도암면 정천리. 현재 74가구 15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의 유래
도암면 정천리는 원래 ‘정천동’과 ‘호음시동’ 2개의 마을로 이루어 졌으나 호음시동은 폐촌되고 정천리(淨川里)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샘천(泉)자를 써서 정천동(淨泉洞)이라 불렸는데 마을 앞으로 시냇물이 흘러야 마을이 융성해진다는 말에 150여년 전에 물길을 돌리는 대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부터 정천동(淨泉洞)에서 정천동(淨川洞)으로 마을이름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숨은 일꾼! 박현재 이장님
정천 마을 또한 이농현상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피해갈 수 없어 60세인 박현재 이장이 마을의 막내가 되버렸다. 박 이장은 자신들의 세대가 가고나면 누가 농사를 짓고 마을을 번성시킬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한다.

6년 전부터 마을의 이장직을 맡아 묵묵히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박 이장은 그래서인지 얼굴 한켠에 시름이 가득하다. 이를 두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마을을 위해 땀 흘리는 박 이장이야말로 진짜 이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솔선수범하고 근면한 사람, 주민화합에 앞장서고 정직한 사람, 주민소득을 올리기 위해 열심인 사람…

마을전각에서 이루어진 짧은 인터뷰에, 앞서가는 이장과 뒤에서 밀어주는 마을주민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훈훈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마을의 자랑!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강선봉(降仙) 아래 위치한 마을의 형국이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있는 ‘선인취아’ 형국이어서 이는 명지에 속해 유명인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왕자들을 호위하다 왜병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박지수라는 분은 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충효사에 배양되는 등 마을을 빛낸 인물들이 셀수 없이 많아 정천리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정천리 마을 주민들. 대부분 밀양 박 씨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정천마을은 친환경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벼농사와 고추, 옥수수로도 유명하다. 특히 고추의 경우에는 마을 공동으로 고추세척기를 구입해 고추 출하 시 모두 세척을 해서 나간다. 안전한 먹거리야말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제공해야 하는 최고의 미덕이라는 박 이장과 주민들의 신념에서 나온 결과다.

그러나 무농약 농법으로 키우고 있는 벼농사의 경우에는 일반농법에 비해 생산비는 더 들어가지만 제 값을 받기 힘들뿐 아니라 판로 또한 만만치 않아 마을의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박 이장의 바람
정천마을은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 이에 따른 노인들의 복지 혜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박 이장은 강조한다. 또한 마을 앞으로 지나는 도로 때문에 사고가 잦고 주민들이 위험에 놓여있다며 화순군에서 이를 시급히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농기계구입을 하는 경우에도 현재 군에서 15~20% 정도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지원폭을 더 넓혀 농촌을 지켜가고 있는 농민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주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담았다.

150여년 전 물길을 돌리는 대역사로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는 정천천.

맺음 이야기
풍광 좋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정천 마을. 사람사는 이야기와 넉넉한 인심이 있어 두고 두고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그곳은 박현재 이장과 같은 부지런한 일꾼과 이를 밀어주고 격려해주는 주민들이 있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농촌의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마을 한편에 흐르고 있지만 묵묵히 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현재 이장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마을 유래를 소상히 알려준 박규주 전 면장님, 충효사 등 마을 곳곳을 함께 해준 박대현 할아버지, 노인회장님, 이밖에 인터뷰에 응해준 마을주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박현재 이장 011_9615_2846

친환경 무농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정천리 앞 들판. 뒤로 정천리가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왕자들을 호위하다 왜병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박지수와 그의 아들 박천주를 모시고 있는 충효사. 지금은 박지수의 12대 손인 박대현 씨가 맡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