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선생

여름날이면 가까운 담양에서 죽세공품들이 여름철 시원함으로 퍽이나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 선풍기 냉장고 에어콘이 등장하였고 동남아에서 수입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여름나기의 실망감을 더해준다.

한 가지 악세사리에도 풍류와 멋을 지닌 옛스럽던 선비와 한량들의 멋을 보라. 합죽선은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중국이나 일본에 그 기술이 전해져 高麗扇(고려선)으로 널리 알려 졌다고 하니 우리나라 고유의 부채인 것이다.

합죽선의 유래는 고려시대 속세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외롭게 생활하던 한 스님이 노리개 감으로 만든 데서 비롯 되였다. 외양은 여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일 위쪽은 동물 뼈로 만든 가체를 머리부분에 해당하고 연결된 고리는 비녀를 나타내며 손잡이 부분은 한복의 윗저고리이며 길쭉하게 뻗어 내린 부분은 치마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부채의 명장 전주 이기동 옹의 말이다. 부채 중에 합죽선은 대나무의 겉대를 얇게 깎아 양면이 모두 겉대가 되게 서로 합하여 부레풀로 붙였다고 해서 생겨난 난 이름이다.

눈여겨 볼 것은 살과 마디에 인두로 새겨 넣은 문양이다. 이 문양은 외형이 갖는 의미 즉 여체와 연관되게 낙죽을 놓아 흥미롭게 박쥐 모양은 남녀의 성적교합과 복을 염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옛말에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라는 말이 있다.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철 단오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다음 새해를 위해서는 동지에 달력을 선물하는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듯 선조들은 남녀간의 행위는 밤에 이루어지고 박쥐를 한자로 복(蝠)과비교하니 인간의 福과 동일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마디에 새긴 국화는 절개를 나타내는 데 서리올 때 피어 눈이올 때 지는 꽃이기 때문이다. 결국 烙竹(낙죽)한 국화의 의미는 합죽선을 소지한 남성 자신의 내부를 향한 강한 절개를 표현한 것이다. 또 시조나 가곡이라도 한 곡조 할라치면 부채로 장단을 맞추거나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한껏 멋을 즐기며 선비들에게는 일년 사계절 애용물이였던 셈이다.

한편 조선시대 여인들이 노리개나 은장도를 소지하듯 선비들은 합죽선을 소지했던 것이다.

이경재 선생은 현재 숭신공고에 재직중이며,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교육, 역사철학을 전공했다. 신춘문예에 시로 등장해 제35회 통일문예대상 및 대학백일장에서 시부문 장원을 하는 등 실력을 인정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