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계 교육비 부담이 평범한 주부들을 부업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 간 자투리 시간마저 주부의 온전한 시간이 아닌, 경제활동에 쓰이는 것. 가사와 육아에 부업까지….
이들의 하루는 쉴 틈 없이 고되지만 더욱더 일상이 힘든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과 사회의 ‘비딱한’ 시선이다. 엄연히 경제활동을 하지만 ‘부업’이라는 이유로 완벽한 아내와 엄마를 요구하는 가족,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아줌마’라는 편견으로 아마추어 취급하는 사회가 부업 주부들에게는 그 어떤 육체노동보다 버겁다.

재택근무? 빛 좋은 개살구

주부 이정화 씨(39)는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동네 인근 대형 할인마트로 향한다. 3개월 전부터 야채 코너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10시 30분이지만 그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다. 그래도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돌리고 널어야 하며,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의 점심까지 준비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정작 저는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30분 더 자든지, 욕실 청소라도 하고 나오는 게 낫거든요.”

이씨는 오전에 집안일을 해놓지 못하면 퇴근 후 밀린 일을 다 해야 하는 부담도 크고, 남편의 타박이 싫어서라도 깔끔하게 처리해놓는 게 마음 편하다고 토로한다.

“언젠가는 오전에 너무 바빠서 아침 설거지를 쌓아두고 출근을 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연장 근무가 있어 남편이 먼저 집에 왔지 뭐예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에게 남편은 “이런 식으로 살림할 거면 당장 그만두라”고 화를 내더라는 것. 서러운 마음에 일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월 5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입과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우아한 피오나 vs 생계형 피오나

아침에는 억척 살림꾼, 낮에는 우아한 공주…. 가사와 함께 자신을 가꾸고 자아를 실현하는 여성들을 놓고 ‘피오나 주부’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오직 가사와 자녀 교육에 전념하는 주부들에게는 동네에 남아 있는 주부라고 해서 ‘동남아족’이라는 별칭이 있다.

‘피오나 주부’의 핵심은 바로 자아실현과 정체성의 확립. 즉 가사와 육아, 자녀 교육 등으로 소홀해졌던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찾아가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동남아족’의 본분은 당연히 완벽하고 똑 소리 나는 살림살이. 비록 자아 실현이니 정체성이니 다소 우아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가사와 육아, 자녀 교육을 빈틈없이 해낸다는 점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부업 주부의 입장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엄연히 돈을 벌지만 ‘부업’이라는 게 그저 심심풀이 용돈벌이 정도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집 안이 지저분할 때, 또 엄마가 없을 때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남편에게 때려치우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 그럴 때마다 갈등을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뻔한 수입을 아는 남편은 내심 그만둘까 봐 속으로는 노심초사한다고. 즉 돈도 벌고 집안일도 완벽히 해내는 아내를 바라는 게 대다수 남편의 심리라고 지적했다.

재택근무 등을 비롯한 주부들의 부업은 생계형이 많지만, 그럼데도 불구하고 떳떳한 경제활동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상당수 '생계형 부업 주부'를 상업화시켜 우아한 '피오나 주부'로 탈바꿈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라고 '생계형 피오나'도 당당히 직장 여성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말한다.

뚜렷한 부업의 목적과 투명한 손익 계산을

1년 전부터 찜질방에서 새벽 시간대에 카운터를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옥희씨는 평소 초저녁잠이 많고 새벽에 잠이 없는 생활 패턴 탓에 낮잠 자는 일이 잦았던 그에게는 어찌 보면 안성맞춤인 부업. 게다가 고3 아들의 과외비도 큰 부담인 터라 한 푼이 아쉬운 것도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시작했는데 가족들은 늘 불만이죠. 새벽 2시에 일을 나가 오전 11시에 들어오니 아침을 차려주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남편은 입버릇처럼 몇 푼이나 버냐고 화를 내기 일쑤란다. 그래도 그가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돈도 벌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부업을 하고 싶다면 혹은 하고 있다면, 가계 수입을 위해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남편과 가족에게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가족은 내 편으로, 집안 일은 덜 완벽하게

하지만 부업을 어떻게, 돈벌이로만 볼 수 있을까. 가계 수입을 위해 부업을 하는 주부도 많지만 일상에서 탈출하고 활력소를 찾기 위해 부업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업 주부의 확고한 의지와 더불어 가족과 주부의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부업에 대한 의지를 관철시켰다면 그에 따른 역할 분담도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편 부업 주부도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려야 한다. 전업 주부가 아닌 이상, 아무리 짧은 시간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예전과는 다른 빈틈이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보다, 사회의 편견보다 바로 남편의 이해다. 남편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역할을 분담해야만 편안하게 부업에 매진할 수 있다. 가사에 대한 역할 분담이 안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고 비교하는 태도도 지양하는 것이 좋다.

결국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부업이라 해도 집 안에서 주부의 자리가 너무나 크다 보니 부업 주부들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아울러 ‘부업이니까, 많은 돈도 아니니까, 언젠나 그만둘 수 있으니까…’등 부업을 가볍게 대하는 주부의 자세도 부업을 업신여기는 사회 풍토에 일조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