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기 한국복지재단전남지부후원회장

어느새 다사다난했던 병술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듯 엊그제까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던 날씨가 차갑고 매서운 전형적인 겨울 날씨가 되었습니다.

겨울에는 하얀 눈이 내려서 낭만적이라고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겹고 잔인한 계절입니다. 차가운 길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노숙자, 냉방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독거노인과 편부. 편모, 조부모 등 결손 가정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자꾸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너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행히 자선기관이나 구호 단체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각가지 행사들을 펼치고 있으며, 한사코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성금을 보내오는 훈훈한 인정들이 있어서 차가운 겨울 바람이 그래도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작은 정이지만 서로 주고 받으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아름다운 상생(相生)을 생각하다가 문득 어린 시절에 들었던 옛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마을에 남루하기 짝이없는 행색의 할머니가 누더기나 다름없는 보퉁이 하나를 안고 나타났습니다. 하룻밤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 동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커다란 대문집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웬일이슈?" 그 집 하인인듯 싶은한 남자가할머니를 위아래로훑어보며 두 눈을 내리뜬 채 물었습니다.

"예, 예. 저, 하룻밤만 묵어갈 수 없을까 하고…."
"이 늙은이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주책을 부리는 거야, 냉큼 나가슈! 우리 마님 눈에 띄어 경치기 전에!"
"오랫동안 신세 지진 않겠소, 하룻밤이면 되오."
"나가라니까 왠 잔말이 이렇게 많아!"

그 댁의 바깥주인이 밖이 소란스러워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연유를 묻는 바깥주인에게 하인은 할머니의 사정을 고했지요.

할머니의 행색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바깥주인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네 이놈, 문단속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소란이 생긴 거냐. 어서 문 닫아 걸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등을 떠밀려 내쫓기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동네 안을 몇 바퀴 돌아다니다가 동구 언저리에 자리잡은, 문밖이 정갈하게 빗질된 자그마한 초가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는 마당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할머니는 그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하룻밤 신세를 졌지요. 없는 살림이지만 그 집 가족들은 지친 할머니를 친 혈육 이상으로 극진하게 보살폈습니다.

이튿날 안주인은 이른 아침을 지어놓고 할머니가 기침하시기를 기다렸지만 기척이 없기에 방문을 열어 보니, 할머니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방안에 보퉁이 하나를 남겨 놓은 채 사라지고 말았지요.

그 할머니의 정체는 의인화된 복(福)이었습니다. 그후 복 보따리를 받은 그 집은 번창 일로를 걸었고, 복 덩어리를 쫓아낸 부잣집은 급속하게 쇠락하는 운명에 처했구요.

이 이야기는 협업을 삶의 기반으로 삼았던 농경 사회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복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눔의 아름다움을 어느 때보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눔의 미학은 모두를 함께 자라게 합니다.

모두가 복을 받고 잘 사는 아름다운 사회의 실천은 지극히 작은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정한 말 한 마디와 따뜻한 시선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복된 열매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어 사람 사이를 흐르는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복이 넘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의 현재가 비록 힘겹고 어렵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호소합니다.

새밑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각자 자기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보고 그들과의 애틋한 만남이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축복이 넘치는 사회를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