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된다고 해서 저는 내심 기대가 컸습니다. 매주 토요일 쉬면 뭘 할까, 아이들과 여기저기 못 다녀 본 곳도 돌아다니고 토요일 하는 문화강좌에도 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그래야지 하면서 말이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부터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려고 분주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구나, 금요일 저녁 늦게 늦게 자고 아침 늦게까지 푹 자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죠.

아침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아도 되고 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우려고 실랑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지더군요. 주 5일 근무 첫 토요일, 저는 주 5일 근무와 상관없이 학교에 가는 큰 딸 혜준이를 등교시키고 아직 유치원생인 강혁이, 남혁이와 정말 원없이 오전 내내 잠을 잤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둔 덕(?)에 토요일에도 보육시설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던 두 아이들은 아침에 깨우지 않으니 오전 11시가 되도록 잠을 자더군요.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보니 얘들이 그동안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느지막이 아침을 챙겨먹고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남편과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아이들을 데리고 하천으로 비 온 뒤의 물 구경 하러 나섰습니다. 아이들 무릎 정도 만큼 하던 물이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많이 불어나 둔치까지 물이 차 올라 있었습니다.

정말 비가 많이도 왔더군요. 아이들과 화순천으로, 생태숲 조성이 한창인 수만리로, 환산정이 있는 서성 저수지로 차를 타고 한 바퀴 빙 돌고 나니 오후가 훌쩍 지났습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매달 첫 주에 있는 지인들 모임에 갔다가 욕조에 거품 듬뿍 풀어 아이 셋을 목욕시켜 재우고 ""불멸의 이순신""이랑 케이블을 통해 상영되는 몇 편의 영화를 보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일요일 아침이 되었더군요.

마침 일요일이 5일마다 열리는 화순장날이라 아침을 먹고 온 가족이 5일장에 갔습니다. 화순 5일장은 품목도 많지만 인근 광주 등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 늘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지요. 가축시장에 가서 꽥꽥거리는 오리며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다가 일주일 동안 먹을 생선 몇 가지를 사들고 시댁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비가 그친 상태라 어머님과 아주버님은 밭에 나가시고 산달을 두 달여 앞둔 형님만 집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아이들과 집 뒤 텃밭에 심어놓은 토마토며 호박이 얼마나 자랐나 보고 있는데 마침 아주버님이 집으로 들어오시더군요. 차를 보고 우리가 온 줄 아셨다면서 손에 아이들 먹을 아이스크림을 들고 말이죠.

아주버님과 형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밭에 계신다는 어머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머님께선 고추밭에서 호미를 들고 잡초들을 뽑고 계셨습니다. 땅도 질고 모기도 많으니 어여 집에나 가거라시며 어머님은 말리셨지만 어머님 혼자 고추밭 이랑의 풀을 메게 하기엔 젊은 저희가 너무 송구스러워 고추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잡초의 생명력이 질기긴 질기더군요. 아무리 손으로 잡아채도 줄기만 끊어질 뿐 땅 속 깊이 내린 뿌리까지는 뽑혀 나오질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가 호미를 챙겨들고 어머님과 저와 남편 셋은 본격적으로 풀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셋이 한 고랑씩 들어가 풀을 메며 시골동네 돌아가는 얘기며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 벼에 농약을 칠 때가 됐다는 등, 뉘 집 고추밭에선 벌써 탄저병이 오려는지 고추가 말라 죽더라는 등, 옥수수가 익을 때가 됐다는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한 고랑 한 고랑 밭을 메다보니 어느새 아홉 고랑의 풀이 말끔하게 뽑혀져 나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오랫동안 몸을 숙이고 있어선지 허리도 아프고 풀을 뽑고 낯선 호미질을 하느라 손목도 시큰시큰하고 계속 쪼그리고 앉아있어선지 발목도 아픈 것이 농사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성하게 자란 풀을 다 메고 된장에 찍어 먹을 풋고추 몇 개를 따 들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님의 말 한 마디에 욱신거리고 시큰시큰한 온 몸의 피로를 말끔히 잊어버렸습니다.

""아이구, 내 혼자하면 사나흘은 걸렸을 텐디 니들이 와서 해중께 오늘 다 끝내 붓냐. 이제 밭일은 다 끝내고 낼부터는 논에나 가고 고추 익으면 고추나 따면 쓰것다. 니들 고상했다.""

세상에 이 한마디보다 더 소중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예순넷 자신 우리 어머님이 저희보다 훨씬 더 피곤하시고 몸이 고되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당신의 고된 몸보다 어쩌다 한번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을 거드느라 고될 자식들 걱정부터 하셨습니다.

간사하고 이기적이고 나쁜 자식들이라고 혹자는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쉬는 날 시골에 가 농사일을 거들기엔 어쩌다 한번 내려와 어머님께 농사짓기 힘든데 조금만 지으라는 둥, 일 좀 조금씩 하라는 둥, 바빠서 자주 못 왔지만 앞으로 자주 내려와 돕겠다는 둥 하며 아침 일찍 왔다가 차가 밀린다며 오후에 자동차 트렁크에 된장이며 고추장, 쌀이며 감자 등을 한 아름 바리바리 싸 들고 슬그머니 올라가는 자식들을 보면 정말 시댁에 간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있으면서 시간이 날 때 농사일을 거들어드린 뒤 어머님의 ""니들이 있어 수월하게 했다, 고맙다""는 한 마디를 들으면, 신기하죠? 다른 모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그래 어머님이 고생하시는데…""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본격적인 주5일 근무 첫날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일손이 부족해 사람을 사서 일을 해야 하지만 품삯을 주고 사람을 부리기엔 품삯이 부담스럽고, 혼자서 하자니 힘에 겨워 벅차 고민하며 매일 논으로 밭으로 내 식구들을 먹이겠다며 농사를 짓는 가족들이 있지는 않은지요?

모처럼 쉬는 날, 무슨 시골엘 가느냐고 하지 말고 한번쯤 명절이 아닌 주말이나 연휴에 시간을 내서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서 농촌을 지키며 땅을 벗 삼아 사는 우리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심은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