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리니 곳곳에서 마라톤 열기가 뜨겁습니다. 오는 17일에도 화순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리지요. 마라톤대회를 지켜보면 항상 생각나는 어릴적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저는 42.195Km를 거뜬히 완주했었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구요?

오래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무슨무슨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 하일라이트인 마라톤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지요.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출발선 앞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선수들을 보니 저도 같이 뛰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출발신호가 울리자마자 저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이 달리면 저도 달리고 지친 선수들이 물을 마시며 갈증을 풀면 저도 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랬습니다.

올림픽의 꽃이라 그런지 구경을 하는 관중들도 많고 경기를 진행하는 해설가의 해설도 긴장된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긴긴 마라톤의 코스는 정말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힘차게 출발하던 선수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두그룹과 중간그룹, 하위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날씨는 덥고 숨도 턱에 걸렸습니다. 42km는 고사하고 30km도 달릴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달리고자 마음먹었는데 중도에서 그만 둘 수는 없었습니다. 선수들과 같이 정말 기를 쓰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선두그룹의 선수가 결승선 테이프를 끊고 결승점으로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들어오자마자 그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 코스가 그리 쉬운 건 결코 아니지요.

하지만 웬일? 저는 아직 더 달릴 힘이 남았습니다. 선두 그룹선수가 들어오고 마지막 한 명의 선수가 결승점에 들어올 때까지 저는 그들과 같이 달렸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었으니까요.

마지막 선수가 다 들어올 때까지 달렸어도 제겐 더 달릴 힘이 남았습니다. 그저 다리가 조금 아프고 약간의 힘만 들 뿐 거뜬하더군요. 제가 올림픽에 출전했다면 금메달은 당연히 제 몫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저는 제가 어린 나이에 그 힘들고 힘든 마라톤 코스를 끝까지, 그것도 힘이 넘쳐서 마지막 선수가 결승점을 들어설 때까지 달릴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는 오로지 저만의 페이스로 완주를 했던 겁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선수들이 달리면 방바닥 위에서 달리고 경기 중간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바닥에 털썩 앉아서 쉬었던 거지요.

선수들이 물을 마시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꺼내 마시며 저는 그렇게 달렸던 겁니다. 달리는 속도나 경기 기록에 상관없이 저 혼자 저 만의 속도로 그냥 텔레비젼 화면을 보면서 "선수들이 화면에 나오지 않으면 그 시간에는 달리지 않고 어딘가에서 쉬고 있나보다", "선수들이 달리는 속도나 내가 달리는 속도나 똑같은 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지요.

화순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화순군내 곳곳에 붙어있는 대회를 알리는 팜플렛을 보면서 그때 일이 생각나 몇자 올려봤습니다. 화순마라톤대회에 참가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