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채(문화관광해설가)

파란만장한 나의 젊은 시절 중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30여 년 간의 교직을 감회 깊게 마감하고, 2005년 乙酉年엔 또 다른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출발선상에 서있다.
포병장교, 고교교사 등 40년 가까운 짧지만은 않은 세월 동안 젊은 청푼들 속에 파묻혀 아낌없이 흩뿌리며 내달리며 살다보니, 벌서 어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자랑할 만한 것 하나 남긴 것 없는 초라한 인생에 불과하나, 그러나 열심히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 온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노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좀 욕심을 부려 그럴듯한 대답을 찾아보자면, “노후에도 골프를 칠 수 있으면 되잖아.” 한마디로 명답(名答)이다.
노후에도 골프를 칠 수 있는 경제력(經濟力)과 골프를 칠 만한 건강(健康)과 골프를 함께 즐길 친구나 이웃들이 있으면 정말 행복한 누후의 삶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틀 속에 해당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또 진정한 노후 생활의 바로미터는 아니다. 비록 가진 것은 부족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고 건강하면 자유롭게 즐길 노후의 여가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앞으로의 여생(餘生)은 생각이 뚜렷하고, 언행(言行)이 분명하고, 추한 모습 전연 보이지 않는…, 생솔가지 타들듯 향기롭고 상쾌한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준비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정년을 앞두고 노후를 계획하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의 글이 될까하여 꾸중을 무릅쓰고 당돌하게 나의 생각을 올려 봅니다.
선배 어르신들께서는 넓은 아랑을 베풀어주시길 삼가 바랍니다.
첫째, 늙은이에게는 3대 수칙이 있으니,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뒤뚱거리거나 넘어지지 말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녀야 하고, 끼니를 거르지 말되 절대 과식(過食)은 삼가하며, 또한 급격한 환경변화는 노인들에게 신체리듬을 깨드리기 쉬우니 가능하면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말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야 좋다.
둘째, 매사에 너무 표 나게 앞서나가거나 설치치 말고, 남을 헐뜯거나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지말라. 상대방이 간여한 일엔 가능하면 간섭 하지 말고, 묻거들랑 가르쳐 주기는 하되, 잘 모르는 척 어수룩해야 평안하다.
셋째, 늙으면 어차피 젊은이들에게 신세질 몸이다. 젊은이들을 이기려하지말고 가능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라. 모든 일을 한 걸음 물러서서 이해하고, 양보 하는 것이 원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다.
넷째, 그렇지만 무례한 행위나 경우에 없는 일을 당하거든 찔끔찔끔 잔소리쪼로 훈계하지 말고, 한꺼번에 몽땅 추슬러 따끔하게 불호령을 내려라.
그것은 사회를 위한 늙은이의 마지막 봉사다.
다섯째, 분수에 넘는 돈 욕심을 아예 버려라.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해도 눈 감으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인색하게 짠돌이로 굴지 말고 좋은 일 많이 하고 덕도 쌓으라.
여섯째, 하지만 돈은 늙어서 더욱 필요한 것. 죽을 때까지 놓지 말고 꼭 쥐어야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돈은 늙은이를 지켜주고 모두가 받들어 모시게 하는 원동력이다. 물려줄 만큼만 형편껏 물려주고, 두 늙은이 몫은 꼭 가지고 쓰면서 살라. 혹시 재산 넘보는 자녀가 있거든 이 재산 어디 안 간다고 따금하게 질책하라.
여덟째, 늙을수록 건강에 유념해서 부부가 함께 해로하되, 영감이 먼저 눈을 감는게 편하다. 그러니 보약은 마누라에게 양보하라. 그리고 웬만하면 사사로운 것까지 모두다 양보해버려라. 그러면 마음이 더욱 평안해진다.
아홉째, 참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두 명의 친구는 꼭 있어야 한다.
어린시절 함께 놀던 고향 친구나 개구쟁이 학창시절의 친구,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이웃이나 직장 동료 중에서 힘들거나 어려울 떄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함께 의논 할 수 있는 친구 말이다.
열 번째, 고독을 달래줄 독실한 종교생활과 비록 가진 것은 부족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나눔과 배려’의 정신까지 곁들여서 봉사활동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여서, 세상이 힘들 때에 의지하고 싶고 큰 힘을 주시는 하느님, 혹은 神과의 동행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열한 번째, 부부가 함께 여행할 기회를 틈틈이 마련하여, 추억을 회상하고 아름다운 삶을 반추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늙으면 외롭다. 참으로 외롭다. 외로움은 고통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내조자와의 대화 기회 제공이 여행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 또 있단 말인가?
열두 번째, 술을 절제하고, 골프 대신 등산, 새벽 운동, 산책 등 규칙적인 운동을 밝고 건강하게 이웃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노후 건강대책이 될 것이다.
열세 번째,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년을 살아가는 마음자세다.
과거에 칩착하여 젊었을 때의 기준으로 노년생활을 바라보는 것은 큰 불행이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 노년의 지혜로 노년을 살아가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얼굴에 주름이 많더라도 마음의 주름이 적을 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늙을수록 상대방을 용서하고 배려하면서 옳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다짐하지만 앞으로의 나 자신은 오로지 자신만의 흉허물만 겸허하게 뒤돌아보면서, 참회(懺悔)하면서, 가능하면 단순하게 살아가면서, 덜 가지려고 애쓰면서, 남의 앞에나 위에 절대로 나서지 않고 심부름이나 제대로 잘하면서,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것이라도 항상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제자들의 성공을 마음속으로 기원 드리면서, 처음처럼 언제난 변함없이 가난하고 서러운 약자들 편에 서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치열하고 뜨겁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