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에 보성회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1년 6개월을 근무했던 시기에 체험했던 이야기입니다.
61년도에 전국적으로 1면 1개 중학교를 설립할 때 고등학교까지 세울 계획으로 부지를 확보하였지만 농어촌 인구의 감소로 고등학교를 세우지 못해 7학급 중학교의 학생수로는 관리하는데 너무나 힘들게 넓었습니다.
교장 관사 옆에는 네모반듯한 200여 평의 묵전 밭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작물을 심지 않아서 대나무뿌리가 많이 뻗어 있었고 탱자울이 여러 해동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부임 초에는 간단한 취사를 하면서 주중 수요일과 토요일에 화순 집에 다녀오곤 했습니다만 텃밭을 일구어 가꾸면서는 아이들 어메가 함께 내려오거나 토요일과 방학동안에는 두 딸아이들도 함께 관사에 와 있어서 바닷바람도 쏘이면서 텃밭가꾸기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봄부터 틈나는 대로 한쪽에서 차근차근 이랑을 만들어가며 무우, 배추, 상추, 갓, 쪽파, 가지, 고추 등 채소류를 심어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퇴비는 보성회천이 주산지로 유명한 쪽파와 감자의 대농이요 대상인이던 오 형 권 학교운영위원장이 얼마든지 갖다 쓰라고 했고 복합비료를 섞어 삽으로 깊게 파고 가물 때에는 도랑에 물을 흠뻑 줄 수 있도록 약간 비탈이 진 밭이랑을 맨 위에서부터 호스로 물이 아래 이랑으로 차례차례 흘러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텃밭을 가꾸었던 초보가 어린 새싹을 벌레가 갉아먹어버리지 않게 하얀 가루약을 부려 주거나 달팽이를 잡아주고 벌레가 배추 속에 파고 들어앉지 않게 병충해 방제에 애썼고, 제초제는 전혀 쓰지 않는 대신 아이들의 어메가 정성스레 김을 메어주어 대 풍작을 이루어 내어 땅은 거짓이 없다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200여 평을 잘 가꾸었으니 솎아 내거나 뽑은 것들을 교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을에는 시장 상품 못지않은 무우를 땅에 묻었다가 운영위원장과 부위원장에게 50개씩을 나누어 주었더니 너무도 고마워했으며 집에 김장을 다해 놓고도 무우, 배추가 많이 남아 군청에다가 어머니가 안 계시는 부자가정 다섯 가구를 가르쳐달라고 해서 무우와 배추김치 두 수대씩을 차례로 가져다주었습니다.
김장거리 외에 양념만 20여만 원이 더 들어갔고 저녁 식사 후에 네 식구가 힘들게 담아서 출근길에 한 집씩 가져다주기를 5일간 했더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힘을 다 해 심고 가꾸어 거둔 것을 나누어 먹는다는 생각으로 교직원들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하였습니다만 내 마음 같지가 않았습니다.
교직원들은 시장에서 사 먹는 것처럼 손질을 해서 사람 수와 퇴근 시간에 맞추어 간편하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했고 어찌된 일인지 잠간씩 텃밭에 들려 뽑기도 하고 다듬어 가져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가꾸어 나누어 주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만 젊은 분들일수록넓은 땅이 있어도 흙을 파서 심고 가꾸고 나누어먹는 일과는 생각이 멀어 보였고 몇 차례고 어려워하지 말고 갖다 먹으라고 해서야 마지못해 퇴근하는 차에 실어다주다시피 해 나누어 주었고 다섯 가구의 부자가정에는 정성껏 담근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를 가져다 주었지만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반응에 내가 괜한 일을 했구나 하는 뉘우침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농촌에 일손이 부족할 때 학생들과 군인들이 동원되어 보리베기, 모심기, 벼베기 등을 노력봉사를 해 주다 보니 농사철이 되어도 큰 도로변에는 농부들이 일을 하지 않고 일손돕기를 기다리는 폐단이 있었는데 전화로 김치를 담그어 갖다주겠다고 하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어투이었으며 담을 그릇을 준비해두고 있으라는 말에는 ""광주에서 김치 갖다주어서 먹고 있는데요."" 하는 것이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이나 복지정책이 잘 못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사 앞마당에도 토란을 심어 잘 가꾸고 살았습니다만 너무 정갈하게 풀을 메거나 일을 많이 하여 아이들의 어메가 힘들어했었지만 직접 가꾸어 우리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리고 교직원들이나 이웃에 나누어 먹는 것에 만족을 느꼈습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이 적당한 운동도 되고 취미삼아 하다보면 생산적인 활동이 된다고 생각하여 왔으나 후임 교장선생님들은 관사의 텃밭을 소홀히 관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서운하기만 했습니다.
관사 옆 텃밭의 축대 위에는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줄지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기에 좋았습니다만 비가 내리면 굵은 물방울이 작물에 떨어져 텃밭 가에 있는 이랑에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피해가 있었습니다.
초임교장으로 회천중학교에서 한해 반을 근무하고 1999년 9월에 화순교육청 교육과장으로 옮겨왔습니다.
다음은 관사마당의 좁은 화단과 화순실고 앞에 함께 근무하던 장학사의 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어 보았던 이야기로 이어 가겠습니다.
구혁우 (전 도곡중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