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며칠 전 기말고사를 봤다.

제 딴엔 잘 했다며 피자를 사달라는 아이의 점수는 그리 썩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네가 공부한 만큼 점수가 나온 것 같니?"" 라고 물었더니 ""잘은 못한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본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학교 시험기간이면 문구점에서는 그 학교 선생님들이 주로 본다는 출판사의 문제지가 불티나게 팔리고 놀이터에선 한동안 아이들을 볼 수 없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친구집 방문은 금지된다. 한 마디로 비상이다.

집에서 문제집 한권 제대로 풀어주지 않는 엄마는 상식이하가 된다. 엄마들의 화두도 자연히 공부는 많이 시켰느냐, 어느 출판사 문제지를 몇 권 풀었느냐로 이어진다.

나라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험공지가 나온 그날 저녁, 문구점으로 가 기말고사 문제집을 한 권 사서 아이와 하루에 다섯 장씩 풀었다.

학원까지 갔다가 한두 시간 놀고 저녁을 먹은 후부터 아이와 문제지와의 한 판이 시작된다. 아이는 문제지를 2~3장정도 풀고는 자꾸 딴 짓을 시작하기 일쑤다.

별것도 아닌(?) 쉬운 문제도 자꾸 틀린다. 몰라서 틀리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문제의 의미를 헛갈려 틀리는 경우가 많다.

더하기부호를 빼기부호로 본다거나 `뭐뭐 하지 않는 것은?` 등의 문제를 혼동해 틀린다. 게으른 엄마 덕에 겨우 문제지를 1권 풀고 게시판에 올려진 문제들을 푸는 것으로 시험 준비를 마쳤다.

아이에게 시험이 끝나면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잘 했다고만 해야지 마음먹었다.

시험이 끝난 날, ""힘들었지? 열심히 했으면 됐어"" 위로하며 통닭도 한 마리 뜯었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듣고 나니 감정이 제 멋대로 움직인다. 아이가 시험을 자주 본 건 아니다.

5월엔가 한번보고 전국적으로 보는 무슨 학력평가인가 본 후 아마 이번이 세 번째 시험인 것 같다.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시험이 전부는 아니야, 아이에게 부담주지 말아야지,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몰라서 틀리는 것도 아니고 실수로 틀리는 거, 성적으로 판단하기는 일러""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막상 시험이 닥치면 왜 문제지부터 사게 되고 점수를 보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쉽고 속이 상하는 건지. 시험의 주체는 분명 내가 아닌데 시험 때가 되면 긴장하고 몇 권의 문제지를 풀어야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시험이 전부는 아니며 학교의 열등생이 반드시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건 아니라고 머리는 말하는 데 마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엔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도 대학문이 좁고 취업문이 좁은데 아이가 그 시기를 거칠 무렵엔 더 힘들고 어려울까봐 학교성적이라도 남들보다 좋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모마음일 게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아이,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가고 취업할 동안 수없이 많은 시험을 거칠 것이다. 과연 나와 아이는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정말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오는 13일에 또 시험을 본다고 한다. 이번엔 성적에는 안 들어간다고 선생님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지만 나는 안다.

내일 또 문제지 한권을 사러 문구점에 갈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