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관규(52) 씨

세탁의 달인, 걸어 다니는 노래방, 화순의 명물, 진짜 멋쟁이. 이는 모두 백합세탁소 대표 원관규 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그동안 수많은 매스컴을 타며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의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바느질 외길 38년 인생의 애환도 깊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던져 주고 있다.

그가 세탁 외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는 가난했던 어릴 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어버이날에 열린 음악발표회에서 독창을 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옆집 형으로부터 빌려 입은 기워 입은 옷이 문제가 돼 독창도 못하고 합창마저도 맨 뒷줄에 서게 된 일이 있었다. 키가 작아 앞줄에 서야하는데도 꿰매 입은 옷이 담임 선생님 눈 밖에 난 덕이었다.

원관규 씨는 그때 당시 옷 없는 설움을 뼈져리게 느끼고 어른이 되면 옷만큼은 직접 해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옷 없는 설움에 더해 못 먹고 못 배워야 하는 설움이 버티고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화순읍 자치샘 부근 양복점에서 ‘꼬마둥이’로 종업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교복 입은 친구들과 마주칠라치면 부끄러워 숨어버릴 정도로 못 배운 한이 컸던 그는 갖은 설움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기술을 익혀 나갔고 11년의 양복점 종업원생활 끝에 지금의 화순읍 교리 자리에 백합세탁소를 차리고 27년 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세탁은 기술이 아니고 예술이다
원관규 씨는 세탁 일을 함에 있어 금전적인 욕심보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고객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할 만큼 세탁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큰 그는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옷이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었을 때를 가장 큰 기쁨의 순간으로 꼽는다.

밥은 굶어도 노래는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원관규 씨. 열다섯살 때 마을 콩쿨대회에 나가 처음 마이크를 잡은 이후 그동안 전국의 크고 작은 노래자랑에 200여회가 넘게 출연할 정도로 노래사랑이 대단하다.

열 명의 고객 확보에 노력하기 보다는 한 명의 고객에게 더 정성껏 대하려는 그만의 세탁 철학은 입소문을 통해 많은 단골손님들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런 단골들에게도 불만이 하나 있다. 바로 세탁물을 제시간에 찾을 수 없다는 것.

이는 다름 아닌 그만의 철두철미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됐다. 대충 넘어가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수선을 다 하고도 조그마한 흠이라도 발견되면 다시 드라이와 다림질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어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는 “고객만족을 높이기 위한 일임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밝힌다.

또한 그는 옷 잘 입기로도 유명하다. 일을 할 때는 어김없이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지만 그러나 단순히 멋을 내기위해 하루에도 3~4번씩 옷을 갈아입는 것은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과의 첫 대면 때 깨끗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미학적 서비스를 제공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만의 철학 때문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직업정신과 고객중심의 생각이야말로 세탁 일을 단순한 기술에서 예술로 승화시키게 하는 힘이었다.

아버지 가슴에 박힌 세 개의 못, 그리고…
원관규 씨의 아버지는 어느 날 자식들을 불러다 놓고 손바닥에 놓인 못을 가리키며 “이 못이 내 가슴에 박힌 세 개의 못이다. 못 가르치고, 못 입히고, 못 먹인 한이 못이 되어 가슴에 박혀 있다”며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흐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대물림 해주기 싫어 더 열심히 살았고 두 아들을 통해 못 배운 한을 풀어내며 일과 노래를 벗 삼아 인생을 보내왔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27년 동안 운영해오고 있는 백합세탁소 일을 앞으로 23년을 더 해 한자리에서 반세기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화순읍 교리 백합세탁소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일요일을 제외하곤 새벽부터 시작해 밤12시까지 이어지는 일은 고단하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그의 손은 춤을 추고 다난했던 옷들이 장단에 맞춰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백합세탁소. 그곳은 원관규 씨의 꿈과 희망을 밝히는 백합등대였다.

원관규 씨 061_374_4666 / 011_603_4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