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美學......찰나의 순간, 그리고 감동을 찍다.

인터뷰
기다림의 美學......찰나의 순간, 그리고 감동을 찍다.
‘내평리 길쌈놀이’ 최초시연 및 사진작가로 화순 문화·예술 발전에 큰 공
‘물염적벽’·‘적벽사진 촬영대회’ 등 사료적 사진 5점 화순군에 기증
  • 입력 : 2022. 10.27(목) 10:16
  • 김일호 기자
[화순군민신문=김일호 기자] 원하는 사진을 담으려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고 그 마음은 정직해야만 진심을 담은 사진이 나온다. 사진 경력 40년의 사진작가 남개 구원홍 선생은 정직한 마음으로 찍는 사진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화순토박이다” 남개 구원홍 선생은 화순읍 광덕리 태생으로 화순에서 나고 자랐다. 한곳에 터를 잡고 현재까지 6대째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는 70년대 초 이동단위농협을 통합해서 만든 화순농협의 창립멤버라는 이력도 갖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농협에서 맡은 사진작업 때문이니 직장과의 인연이 예사롭다고 볼 수는 없었다.

직장과 사진 작업의 병행,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를 힘들게도 했지만 한번 시작한 것은 승부를 보고야 말겠다는 선생의 의지마저 꺾을 수 없었다. 각종 대전에서 상을 받는 등 남다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1981.05.24. 화순적벽에서 제1회 적벽 사진 전국 촬영대회

물염적벽 (현 화순적벽). 동북댐 공사로 인해 1차 수몰되어 수몰 후 일반카메라로 촬영이 불가하여 최초로 특수카메라인 파노라마 카메라로 촬영 (1984)

구원홍 선생의 사진은 화순에서부터 시작한다. 화순의 대표사진작가인 그는 1981년 제1회 화순적벽 전국사진촬영대회를 유치하고, 광주광역시 주관으로 개최하여 수몰 전 화순적벽 홍보에 기여하였다. 물염적벽이 동복댐 공사로 1차 수몰되어 수몰 후 최초로 물염적벽을 파노라마 사진기로 촬영했다. 광주펜타사진클럽 전시회에 출품하여 적벽 홍보에 앞장섰다. 그리고 KBS1TV 광주방송국 남도지오그래피(이웃·풍경·고향)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서성적벽과 화순적벽을 구원홍 선생이 촬영한 모습이 방영되어 사진작가로서 화순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했다.

‘내평리 길쌈놀이’를 최초로 시연한 구원홍 선생은 내평리 길쌈놀이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다. 1984년 최초 시연 당시 그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우연히 화순군 내평리는 미영(무명)을 심어 무명베를 생산함으로써 생활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옛 할머니들의 길쌈놀이를 보고 듣게 되었다.

옛 할머니들의 구전을 채록하고 관련 자료를 모음과 동시에 베틀, 물레 등 각종 장비를 오랜 기간 수집하고, 계획, 발굴한 끝에 마을공동체놀이로 구성하였다. 84년 화순농협 새농민대회에서 최초 시연했다. 내평리 어르신들의 웃고 즐기는 모습과 그 안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구원홍 선생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내평리길쌈놀이는 지금까지 화순군의 전통놀이로 보존되고 있다.

사진작가로서 구원홍에게 ‘화순적벽’과 ‘내평리 길쌈놀이’는 예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화순적벽이 있음에 전국사진촬영대회를 유치하였으며, 지금의 ‘남개 구원홍’이 존재하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분명한 것은 화순적벽과 내평리길쌈놀이는 ‘존재로서의 시간’으로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1984.11.04 ‘내평리 길쌈놀이’ 화순초등학교 운동장 시연 장면, 남산 군민회관 대강당에서 마무리 연습 장면


또한, 화순나들이사진클럽(현 서양사우회)을 1981년 창립하여 이듬해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제1회 천불천탑 운주사 촬영대회를 실시하였다. 나들이사진클럽은 현 서양사우회로 명칭 변경하여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서양은 옛 화순고을 이름이다.

사진작가로서 예술적 감각도 남달랐다. 화순예술인협회 창립멤버인 그는 분야별로 9명을 구성하고, 지금까지 화순예술인협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1년에는 화순 김삿갓 시, 서, 화, 사, 각전에 추진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화순군과 영월군이 상호교류하여 영월군의 김삿갓 축제 기간에 화순군에서도 전시할 수 있는 공을 세우고, 롯데화랑초대전, 영월군 김삿갓축제 초대전을 이끌었다. 화순 금석문 발행에도 구원홍 선생은 있었다. 2002년 화순문화원에서 발간한 금석문은 2~3년에 거처 관내 13개 읍면에 산재해 있는 금석문을 약 6개월여 동안 현지 답사하여 조사 발굴 등, 전체 사진 촬영하여 금석문을 발간완성 하였다.

후배 작가들이 ‘남개 구원홍’을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답변에 “‘사진 좋았다’, ‘화순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신 작가님’ 그 말만 들으면 그만입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게 아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아왔지만, 아직 배울 점이 많고 누구를 대하든지 겸손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증식 기념 촬영. 좌측부터 전 화순군수 구충곤. 구원홍 작가. 안호걸(이슈광주전남, 화순군민신문대표)

지난 5월 16일 남개 구원홍 선생은 화순군에 ‘내평리 길쌈놀이’, 수몰 전 ‘물염적벽’, ‘적벽 사진 촬영대회’ 사진 5점을 화순군에 기증하였다. 작품을 기증하게 된 계기는 내 고향 화순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들이 있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구원홍’을 인정하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고, 내 고장 화순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며 마무리 인사를 지었다.

사진은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기 위한 도구로 쓰일 때 본래의 가치가 돋보인다. 구원홍 선생의 작품들은 진실을 향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선생은 한 번도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순간을 포착해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일 뿐, 그것을 예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40년의 사진 경륜은 오히려 그를 장인에 더 가깝게 만든다. 장인 구원홍 선생. 그는 지금도 사진에 대한 사랑과 후진양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남개(南芥) 구원홍 사진작가(1941년생) 약력
화순사우회, 화순나들이 사진클럽 창립 및 운영. 회원전, 단체전, 교류전, 초대전 등 전시회 다수.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상 등 전국 사진대전 입선 및 특선 수회 (1979~1983). 전국사진촬영대회 사진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등 다수 심사 참여.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본부 제29대 운영자문위원. 화순국조숭모회 이사
김일호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