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면 평리 홍일주(56) 씨

농업의 최 일선에서 힘든 농촌의 현실과 부딪히며 희로애락을 겪고 있는 농민들. 그 중에서도 한발 짝 앞서가는 행보를 보이며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결실을 보고 있는 이들을 찾아 그들의 고민과 꿈, 농촌을 살리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앞서가는 농업인’ 네 번째 순서로 도곡면 평리에서 친환경농업 분야에서 앞서가는 농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홍일주 씨를 만나보았다.

언제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나?
처음엔 도시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에 온 것이 1980년도의 일이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농업지식도 없고 있는 거라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과 손바닥만 한 논이 전부였다. 무작정 덤벼들 수는 없는 일이어서 농촌지도소를 수없이 드나들며 농업에 관련된 지식들을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설하우스붐이 불면서 우리 마을도 36농가가 작목반을 결성해 참외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도곡평리참외’라는 상표로 출하를 했었는데 공판장에서 최고품질 대우를 받았었다. 그때의 성공은 농업 초보인 나에게 자신감을 붙어 넣어줘 주저하고 있던 친환경농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

친환경농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프코리아’라는 단체의 회원으로 등록돼 있어 거의 매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 정도 60여개의 선진 농업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1986년에 일본에 한달 간 현지체험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오리농법, 자운영농법 등의 친환경농법들을 보고 배워 올 수 있었다. 당시의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이라는 개념조차 잡히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선진 농법을 머릿속에만 담아둘 수는 없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친환경 농업이 주목받고 농산품을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 등 단계별로 인증을 해주고 하는 것은 최근에서야 일어난 일이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친환경쌀은 고품질쌀이라는 개념에 그쳤었다. 그래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쌓은 노하우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친환경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현재 어떤 단계인가?
무농약농법의 하나인 쌀겨농법과 우렁이농법을 병행 하고 있다. 현재 화순군 농가의 경우 대부분이 저농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저농약 인증의 농산물은 친환경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농가들이 일반 농사와 별 차이 없는 말뿐인 친환경에 그치지 말고 앞으로 무농약 이상의 친환경농법을 시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친환경농업의 장점은 무엇인가?
장점은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에게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재배를 하면 병충해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소득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수확량은 감소한다. 그러나 식물체의 고를 낸 액비나 식물의 광합성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광합성홍균 등을 이용해 벼를 튼튼하게 해주면 수확량 감소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수치로 따지자면 무농약으로 했을 때 수확량은 5~10% 감소하지만 소득 면에서는 오히려 10~20%정도 상승한다.

액비추출기(왼쪽) - 병충해 예방과 벼의 영양을 높이기 위해 식물에서 고를 낸다. 광합성홍균(오른쪽) - 벼 잎의 광합성 활성화를 도와준다

현재 농사규모와 1년 소득은 어느 정도 되는가?
농사규모는 총 34ha정도 된다. 그중에 27ha는 친환경농법으로 짓지만 7ha는 타지에 있는데다 주위의 논들과의 연계가 안 돼 일반농법으로 하고 있다. 34ha 중에는 동생의 논과 임대, 위탁된 논들이 포함돼 있다.

소득은 작년의 경우 총 3억여 원의 매출 중 1억 정도의 순이익을 냈다. 100% 내 소유의 땅이 아닌데도 이만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고가의 쌀 판매를 가능하게 한 친환경재배와 유통마진을 없앤 소비자와의 직거래 덕분이다.

농산물의 판로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철저히 소비자와의 직거래로 가고 있다. 18년 전 처음 직거래를 시작했을 때는 지인이나 친·인척 등 입소문에 많은 의지를 했었지만 지금은 자매결연을 맺은 소비자들이 전국에 1만가구 정도 된다. 무농약 원칙을 고수하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했던 노력이 직거래의 활성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쌀판매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친다고 힘들어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진정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농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모든 생산자재는 값이 오르는 반면 농산물가격은 제 자리 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점이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발 벗고 나서 고품질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농산물의 생산도 대단위로 하고 판로문제도 농협이나 정부에 의지하지 말고 생산자가 직접 판로에 뛰어들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이 하기에는 힘들겠지만 영농조합법인 등을 만들어 다수의 농민들이 힘을 모은다면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쌀겨 펠렛생산시스템 - 쌀겨와 유기물퇴비를 섞어 만든 펠렛을 모내기하고 5일 정도 후 뿌리면 제초효과 및 쌀 밥맛이 좋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직거래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경관농업을 확대하고 싶다. 제주도의 유채밭이 우리나라 경관농업의 효시인데 이제는 농업도 단순히 먹을거리의 개념을 떠나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체험관광형 농업으로 바뀌어야한다. 마을에 대규모의 보리를 심어 매년 청보리축제를 개최하고 수확에서 탈곡, 정미의 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에게는 믿음과 줄거움을 주고 농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지금까지의 무농약농법에서 벗어나 유기농법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기농법은 산의 부산물에서 미생물균주를 채취→배양→논 투입 등의 과정을 통해 지력을 올리는 것이 선행 과제다. 5년 정도 꾸준히 지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유기농법을 시작할 수 있는 사전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순군에 한가지 바라는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마을의 경우 친환경일괄시스템의 마지막 단계인 친환경도정시설의 도입이 절실하다. 지금은 소형 도정시설이라 품종별로 구분하기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친환경도정시설을 도입하게 되면 쌀자체에 불순물이 없고 몸에 좋은 안전미의 생산기반이 한층 좋아질것으로 기대 된다.

에필로그
홍일주 씨의 하루 일과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꽉 짜여져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벼농사 준비와 화훼 하우스 일을 하며 밤12시 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노동은 그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30여 년간 쌓은 친환경부문의 지식과 경험을 주위의 농가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뛰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친환경선도농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를 지탱하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현재 (사)전국새농민회 화순지회장과 호남작물연구소 명예 연구관 등을 맡고 있는 그는 친환경농업의 확대와 보급을 통해 앞서가는 농업인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장미화훼 하우스에서 아내와 함께 한 홍일주 씨.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다고.

친환경 무농약 쌀인 ‘순미’와 현재 시범 재배를 하고 있는 ‘무지개쌀’. 적(혈액순환)2종, 흑(노화예방)2종, 청(미질향상)1종, 황(현미)1종 등 7종류의 무지개쌀은 ‘품종비교전시포’를 직접 운영하며 소비자가 원하는데로 섞어주고 있다

일괄파종기. 투입구에 빈 모판을 넣으면 흙→물→볍씨 뿌리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화력건조기

그의 사무실 벽면에는 각종 표창장과 위촉장, 친환경교육 수료증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