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길순 대한적십자사 화순지회장.

최근‘국제화 시대`‘세계화 시대’라는 문구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인의 숫자도 숫자지만,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 수만도 어느새 국민 100명당 1명 수준을 넘는 51만 명에 달한다.

법무부는 이런 현실을 감안 체계적인 외국인 인권 보호를 위해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의 출신 국가별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난 99년부터 4회에 걸쳐 외국인 주부들과 어울마당을 함께 하면서 그녀들의 삶에 어렴풋이나마 접할 기회를 가져 왔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끼리 결혼해도 이러저러한 사유로 이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데, 문화적 갈등과 언어소통이 어려운 국제결혼으로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외국인 주부들의 고충은 더욱 무거운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울마당에서 서툰 한국어로, 혹은 그리운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워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과 결혼해 살고 있다는 동일한 환경에 따른 연계가 생긴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들의 가정 내에, 같은 동네 안에, 그녀들을 이해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좀 더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비교적 문화와 인종의 차이가 근소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온 외국인 주부들이라지만, 유난히 단일 민족의 관념이 뿌리 깊은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세계화 시대 운운한다고 한들 우리에게 세계는 우리나라 밖 이야기거나 서방 몇 개 국가 정도에 그친 게 아니었을까?

이민자들의 설움을 알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가정 안으로 들어온 외국인 주부들에게 고스란히 그것을 되돌려 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적십자 화순군지회 고인돌 봉사회는 외국인 주부들을 위한 한국어학당을 열면서 그녀들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들과 연계하고 뿌리내릴 기반을 든든히 할 수 있기를 바랬다.

특히 어머니의 언어능력에 따라 아이의 언어 발달도 크게 영향 받게 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2세들이 또다시 어머니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교육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 심심찮게 가정폭력이 낳은 심각한 사건들이 문제되곤 한다.

그것은 국제 결혼 가정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리는 외국인 주부들의 수도 상당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와 더불어 외국인에 대한 편견, 제도적인 미비점이 이중 삼중으로 그녀들의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 결혼의 4건 중 1건 남짓이 국제결혼이었고,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 여성은 지역별로는 우리 전남이 269명으로 가장 많았단다.

전남 도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 주부들은 이미 2000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그녀들과 인사 한 마디라도 나누어 본 적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녀들의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제 우리 가정, 우리 사회, 우리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