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 1808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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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 1808년 5월 3일
  • 입력 : 2020. 11.24(화) 08:28
  • 화순군민신문
1808년 5월 3일 |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 1814년, 268 x 347 cm, 유화
1808년 카를로스 4세와 그의 아들 페르난도가 잇따라 왕위에서 강제로 물러났으며 이때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는 에스파냐를 점령하였다. 프랑스 점령 후에도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프랑스와 에스파냐 장군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그 후 나폴레옹 군대가 추방당했지만 고야는 프랑스군에 봉사한 것을 용서받았다. 1813년 그는 페르난도 7세에게 유럽의 전제군주에게 대항한 명예로운 민중봉기를 기념해야 한다고 청원하였다.

그림은 얼굴을 볼 수 없는 프랑스 군인이 일렬로 늘어서서 무장하지 않은 양민을 향해 총을 겨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교회의 종탑이 보이고 프린시페 피오 언덕 아래에는 커다란 등불이 켜져 있다. 그림 왼쪽에는 총살당한 시체들의 피가 땅을 적시고 흰옷 입은 한 남자가 팔을 높이 든 채 에스파냐를 지키기 위해 저항한다. 양민들은 등불 앞에서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의 표정이 역력하다.

전쟁에 대해 체념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인간들의 참혹한 모습을 그림 중앙의 등불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했다. 빛을 통해 잔인한 인간성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양민들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나폴레옹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과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고야는 민중봉기를 기념하자고 했지만 사실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무지와 오만이 빚어내는 인간의 잔혹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림은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과 피카소의 《한국전쟁》에 영향을 미쳤다.

1775년부터 궁정화가로 일한 고야는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인물화를 그릴 때 인물의 성격을 꿰뚫어보고 그리는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하였다. 연작 동판화 《변덕》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악습을 풍자적으로 그렸으며 색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에쿼틴트 기법을 사용하였다. 귀머거리가 된 뒤에는 더욱 독창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을 그렸다. 《검은 그림들 Pinturas negras》 연작은 죽음과 파괴, 인간의 잔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세기 후기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1808년 5월 3일 [The Third of May 1808] (두산백과)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