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보 시인

<편집자주>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채 고향을 뒤로한 향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화순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본지는 그런 향우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향우탐방 인터뷰를 기획했다. 종로구에서 '손가네 민물장어'를 운영 중인 서순보 시인을 만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들어봤다.

◇ 서울에서의 첫 기억
서울 올라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화곡동 김포 가는 길목에서 막일이었다. 기둥 밑을 1m 정도 파는 일이었는데 그땐 뭐든 처음이라 서툴게 팠다.
한참을 정신없이 일만 하는데 어느덧 식사 때가 됐다.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뜨는데 바람이 들판에 얼마나 부는지 밥 위에 모래가 싹 앉는 거다. 밥그릇을 들고 있으니까 쌀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 이거 밥을 먹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반찬도 간장과 새우젓이 전부였다. 그런데 같이 있던 형들은 대충 입으로 먼지를 불어가면서 잘만 먹더라.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싶었다.
그렇게 오전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나와버렸다. 어디서 무얼 해야하나 막연하던 차에, 창신동에 고향친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이곳 창신동에 온 계기다. 그때가 51년 아니면 52년이었는데 참... 지금도 그때 그 모래와 수저가 눈에 선명하다.

◇ 구의원 출마의 계기
그때는 이일 저일 다 했다. 오래 살다 보니까 그 시절에 당구장까지 했다. 산꼭대기 시민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어쩌다 보니 통장을 하게 됐다. 그게 내 사회활동의 계기다. 당시에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서울에서 제일 젊은 통장이 나왔다고 여기저기 소개도 많이 받았다. 젊으니까 통장 총무까지 시켜주더라. 그때부터 그런 활동을 하다보니 동네에서 안해본거 없이 다 해봤다. 바르게 살기가 그때 만들어졌잖나. 거기에서 청년회조직을 해서 86 아시안게임 때 최초로 청년 자율방범대를 만들었다. 아마 종로에서 최초였을 거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여기 당구장에서 소외를 많이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특히 지역감정이 심했었다.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자, 연설 한번 하자’는 생각으로 구의원을 출마하게 됐다.

◇ 구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처음 출마했을 땐 떨어졌다. 그땐 내가 초등학교만 졸업을 한 상태여서, 학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나 싶더라. 그래서 학원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거쳤고 경영대학원도 다녔다. 당시엔 경영대학원을 나오면 선거 치를 때 대학교 졸업 자격을 줬기 때문인데, 한참 다니던 도중 공직선거법상 그것을 경력에 못쓰게 하고 정규학력만 쓰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보니까 나는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될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것을 배울수록 ‘니가 해서 뭘 하냐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다 포기하고 음식점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기존에 출마했던 곳이 아닌 다른 데에서 개업을 했다. 그렇게 그 동네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거기서 또 출마를 하게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특히 연설에 자신이 있어서 유세할 때 박수도 많이 받았다. 네 사람 나와서 18% 정도 나왔으니 기탁금도 돌려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선거를 안치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업까지 전부 정리했는데, 살다보니 또 다시 출마해서 밀어내고 밀어내고 해서 한 번 됐다. 종로구의원을 그렇게 된 것이다. 수차례의 도전 끝에 기어이 되긴 되더라.

◇ 아픔에서 나오는 시
시는 영혼이 맑아야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많이 아프면 나오는 것 같다. 시를 쓰게 된 어떤 동기는 따로 없다. 막연하게 어릴 때부터 문학적인 뭔가가 하고 싶었나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 쓴다고 노트에다가 써왔다. 지금껏 그렇게 쭉 써왔는데, 결혼하고 이사하면서 아내가 실수로 싹 다 버려버린 거다. 아깝지만 별 수 있나. 가끔은 그 옛날 동심의 세계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 서울에 상경한 후배들에게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등산을 가든 여행을 가든 길가에 돌맹이나 막대기라도 하나 있으면 발로 차서 넘긴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편하잖나. 어릴 땐 내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뒤에 온 놈도 넘어지라는 심정으로 일부러 놔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진짜 참 삶인 것 같다.

◇ 끝없는 배움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때 수업 중에는 칠판에 써도 이해가 됐는데 밖에 나오면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우리 애들하고 같이 다녔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니까. 포기하고 싶어도 다니자는 마음으로 다녔는데 9개월 중반을 넘어가니 칠판이 다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교과서도 보였다. 그때의 그 기쁨과 희열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학력 및 정규과정과 경력의 필요성도 느낀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일만 잘하면 되지 학력이 무슨 필요냐고 생각했는데 그제서야 깨달았던 거다. 그 뒤로 지금까지 책을 한 달에 최소 한 권은 본다. 덕분에 지금은 책을 보면 책 속이 보인다. 연속성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느꼈다. 이외에도 서울에 올라와서 뭐라도 하려고 학원에도 많이 다녔다. 1년에 몇 개월씩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냈다. 침술, 풍수지리학, 한의학, 명리학 등도 공부를 했다. 통신대학교도 6년을 다녔는데 학점을 별로 못받았다. 공부를 다시 할 것이다.

<그림2중앙>
◇ 가장 아름다운 그림, 고향
집이 있던 곳은 이서면에 동복댐이 들어서고 현재로선 길이 없어 접근할 수 없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길 하나만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런 마음이 담긴 시가 ‘내 고향 이서적벽아’이다.
가게 사무실에 이서 적벽 사진도 찍어봤다. 저 사진처럼 사랑하는 고향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저게 97년도엔가 찍은 건데,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먹고 살다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고향은 내가 아는 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서순보 시인
ㆍ전남 화순 이서 출생
ㆍ전 종로구의원
ㆍ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ㆍ광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ㆍ백두산문인협회 계간『백두산문학』부화장
ㆍ한국문인협회 문단정화위원
ㆍ종로문인협회 운영위원
ㆍ푸른문학 운영이사
ㆍ풍천손가네 민물장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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