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선 우봉리들소리 보존회 회장

마을의 공동체 문화와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는 지 오래다. 그런데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주민들은 예부터 전해오던 그 마을의 전통 민속놀이이자 공동체 문화예술인 ‘우봉리들소리’를 보존하고자 보존회를 만들어 계승해 나가고 있다. 이에 홍용선 우봉리들소리 보존회장(이하 홍용선 회장)을 만나기 위해 우봉리를 찾았다.

그날 춘양면 우봉리 앞으로 길게 뻗은 지석천이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지석천 주위에는 모심기가 끝난 들판이 온통 초록으로 펼쳐져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의 큰 당산나무와 오른쪽의 ‘우봉리들소리’ 기념비가 눈에 들어왔다.

우봉리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홍 회장과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홍 회장은 “화순군민신문이 진즉 나와서 우리 우봉리들소리를 선전도 해 주고 그래야제. 옛날 국보급 양반들이 하는 것 봤으면 기자양반이 깜짝 놀랐을 것인디... 다 가셔붔어. 눈 감아 부렀어. 다 죽고 난 뒤에 인자 오셨어~. 늦었구먼~...”이라며 반가움과 안타까움을 담아 말문을 열었다.

▲ ‘우봉리들소리’ 언제부터 불리었나?

우봉리 들에서 농사지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불렀던 노래인데 역사가 아주 깊다. 보통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모를 다 심고 논 다 매고 난 후 풍년을 기원하면서 대농의 지주들이 고되게 일했던 사람들에게 음식을 장만해 베풀면서 쉴 수 있도록 장려했던 전통인데 100여 년 전부터 내려왔다. 우리 마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마을에도 여러 가지 논농사 들소리, 밭농사 밭노래가 다 있다. 웬만한 부락은 논 맬 때만 노래를 부르면서 매는데 우봉리만은 특별히 해마다 소를 타고 하는 놀이를 했다.

우봉리 앞쪽 들을 ‘신야평’이라고 했다. 지석천 물을 위에서 막아 그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지으니 물이 항상 풍부했다. 논농사를 많이 지어 가지고 그 덕분에 잘 사는 사람들이 몇이 계셨다. 마을 크고 사람들이 많이 살다보니 창을 잘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옛날에는 여름에 정각에 앉아 시조를 읊으면서 노는 그런 한량 같은 분들이 두세 분 계셨다. 그 분들의 창소리에 어울려 들소리가 우봉리에서 많이 불렸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창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꽹과리, 장구, 북, 징 등 농악을 잘하는 분들도 이 마을에 계셨다. 누구한테서 배워서가 아니라 그런 분야에 소질이 있는 너댓 분이 계셔서 그분들과 같이 어울리면 저절로 들소리가 되는 것이다.

▲ 홍목희, 홍국식, 홍옥희, 마을 사람, 모두가 들소리 후계자

우리 마을의 장점은 단일팀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 남녀를 모두 합치면 70~80명 되는데 3년 전까지는 60여 명이 이 공연에 참여했다. 현재는 38명 정도가 참여한다.
보통 문화재는 잘한 사람들만 몇 명 나와서 하는데 우봉리들소리 공연은 우봉리 마을 사람들이 활동하실 수 있으면 전부 다 나오셔서 참여한다. 도나 순천에서 하는 큰 행사 등도 버스 빌려서 마을 사람 모두 가서 공연을 한다.

그 중에서도 홍목희, 홍국식, 홍옥희 세 사람이 대표 후계자이다. 따로 들소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따라다니면서 하게 된 것이다. 들소리에서 선소리를 하는 역할을 한다. 창뿐만 아니라 꽹과리 등 악기를 잘 다룬다.

▲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 ‘우봉리들소리’

2008년도 전남도 주최로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전남 민속예술축제를 했다. 거기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 8월 5일에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받게 됐다. 들소리를 전체적으로 다하려면 제일 먼저 ‘물품는소리’부터 한다. 다음이 못줄 잡고 모심는 소리 ‘상사소리’이고 그 다음이 논매기 순으로 진행한다. 논매기 소리는 초벌매기 ‘더덜기타령’, 한벌매기 ‘세월이 타령’, 군벌매기 ‘난초타령’, 만드리 ‘양산도타령’ 순으로 부른다.
우리 마을은 백중 무렵이면 연례적으로 마을 축제 같은 행사를 한다. 이때는 실질적으로 마을 주민 모두가 논에 들어가서 논매기를 하면서 들소리를 한다.

▲ 우봉리들소리만의 특징

‘물품는소리’는 다른 마을 들소리에는 없다. 우봉리 마을 뒤의 다랭이논은 ‘물품기’를 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이 대목이 들어간 것이다. 또한 서정적이면서도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도 다른 마을 들소리와 다르다. 농사를 주관하는 신인 ‘선농신’이 도와줘야 풍작이 가능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라든지 ‘아가씨들아, 늙은 나를 비웃지 마라’라는 등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노랫말에 들어가 있다. 또한 백중 전후로 논에서 직접 하는 민속놀이인데 우봉리 주민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후 직접 논에 들어가서 10여 년 동안 공연을 해 왔다.

▲ 우봉리 마을 이름의 유래

한자로 쓰기 좋으라고 ‘우봉리’라고 하는데 원래는 ‘우매기’였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안 보이는데 마을 뒤에서 마을을 받들고 있는 언덕 산이 있는데 소의 형상을 딱 닮았다. 그 소의 모습이 어떠냐면 소가 배불리 여물을 먹고 배 깔고 고개 들고 앉아 되새김질 하는 모습이다. 배부른 소가 되새김질하는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이 뒷산 언덕이 닮아 ‘우매기’라고 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전체가 봄철이고 가을철이고 사시사철 굉장히 평화롭다.

▲ 딸을 여의고 싶도록 좋은 부자마을 ‘우봉리’

우봉리는 시골마을 치고 굉장히 큰 마을이다. 예전에는 140여 호 이상이었다. 지금은 이농해서 도시로 나간 이들이 많아 70여 호가 살고 있지만 춘양면 소재지가 있는 석정리 다음으로 큰 마을이다. 옛날부터 우리 마을은 농촌 마을로 조건이 가장 좋았다. 마을 뒤에는 용암산이 있고 앞쪽 들이 넓고 물이 많아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자연조건이다. 우리 마을의 숨겨진 자랑거리는 마을 뒤쪽에 200여 마지기의 다랭이논이 있다는 것이다. 용암산 골짜기에 감춰져 있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동네가 잘 살 수 있도록 탄탄하게 해 준 것이다. 여담인데, 옛날에는 이웃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딸들을 여의려고 애를 썼다.

▲ 고령화로 소중한 문화유산의 맥이 끊길까 걱정

그동안 우봉리들소리가 문화재 가치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고 지원해 온 심홍섭 주무관에게 참 고맙다. 또 마을 주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 있던 후손들도 마을의 이 행사 때는 다들 찾아와 함께한다.

그러나 그나마 명맥을 이어왔던 분들이 자꾸 돌아가시고 마을 사람들은 늙어가니 소중한 마을의 전통 문화가 사라질까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의 들소리에 대한 가치를 알고 소중한 전통문화로 보존되어 후대들에게 이어지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