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사 대웅전

몇 년 전, 비자나무 숲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 춘양면 가동리 개천산(천태산) 중턱에 위치한 개천사(開天寺)를 찾았었다.

하늘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찰답게 산길을 한참 따라 오르니, 개천사는 탁 트인 하늘아래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자나무숲은 짙은 초록빛 침묵으로 울창하게 노래하는 매미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고 아기강아지 보리는 낯선 객들을 보면서도 전혀 짖거나 경계하는 빛이 없이 푸르른 잔디 위를 아장아장 걷거나 팔딱팔딱 뛰어다니기도 하며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기자에게 개천사의 첫 인상은 그러하였었고, 그 후로는 몇 번 놀러만 갔었다.

누그러질 줄 모르는 폭염이 대지를 팔팔 끓게 하던 날, 다가오는 9월23일에 개천사에서 ‘범능 스님 4주기 기념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년 음악회 취재를 못가서 못내 안타까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천사와 비자나무 숲에 대해 화순군민들에게 좀 더 소상하게 알리고 범능 스님 기념음악회에 대해서도 문화적인 차원에서 화순군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如如하신 보원 스님과 개천사 지킴이 보리

또 다시 찾은 개천사.
보원 스님은 如如하셨고, 지난 봄 동백꽃 아래서 스님에게 재롱을 피우던 보리는 더운 볕을 피해 마루 밑에서 졸고 있었다.

∎개천사

개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보원 스님은 “개천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인근 운주사. 쌍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유서 깊은 절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면서 국군이 불태운 가슴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복원불사가 이루어져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입니다.”라면서 “더욱 다행스런 점은 개천사의 비자나무숲이 2007년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83호 ‘화순 개천사 비자나무숲’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령 200~300년 아름드리 비자나무 千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생태공원화 할 경우 화순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입니다.”라고 기자와 화순군민들이 알기 쉽게 개천사에 대한 소개를 한다.

∎개천사와 비자나무 숲

비자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열매는 약제(구충제 등)와 기름을 짜서 식용으로 이용하였고, 목재는 재질이 좋아 각종 가구재로 사용하는 등 귀하게 여겼던 유용한 나무이다.

화순 개천산, 개천사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비자나무 숲은 과거에 사찰 주변에 식재 조성했던 비자나무가 확산된 것으로 보이며 분포면적, 분포본수, 생육상태 등이 매우 양호한 군락으로, 학술적 가치가 크며, 생장이 느린 비자나무로서는 규모와 발달정도가 우수하다.

특히, 개천사 북쪽의 비자나무 1주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 16.0m, 흉고둘레 3.5m에 달하고 수관 폭은 18.4m에 이르는 노거수로 보존가치가 높다.

∎우리나라 유일의 불교, 기독교, 동학의 성지(聖地) 개천사

복원되기 전의 성자 이세종 선생의 생가

보원 스님은 “개천산 북쪽 등광리엔 기독교 성자 이세종(李世鐘) 선생의 생가, 기도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천사에서 약 2Km 거리에 은적암터(한국전쟁 때 소실)가 있는데, 동학의 교조이신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은거하면서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 포교가사집인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집필한 성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특히, 화순의 개천산이 불교, 기독교, 동학(東學)의 성지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 종교를 아우르는 성지인 곳은 없습니다.
개천사와 등광리가 약 3Km 거리이고, 등광리와 운주사도 약 3Km 거리입니다.
개천사-은적암터-등광리-운주사를 연결하는 순례길을 조성하면 불교, 기독교, 동학의 성지를 한 번에 둘러보면서 역사공부도 하고 건강도 챙기는 명품길이 될 것입니다.“고 성지로서의 개천사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한다.

∎개천사의 부도(浮屠)

인터뷰 중 보원 스님은 ‘인생 짧고 인연은 많다’라는 철학적인 글귀가 담긴 기왓장 뒤에 놓인 깨진 돌조각을 보여준다. 흐릿하게 남겨진 한자를 읽어보라는데 ‘0월당’ 같다고 하자 보원 스님은 부도가 있는 곳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이곳에 보관해 놓았다며 지월당(智月堂)이라고 일러주었다.

17~18세기 개천사의 사세(寺勢)를 보여주는 것은 개천사의 부도(浮屠) 5기이다. 향토문화유산 24호로 지정된 석종형(石鐘型)과 팔각원당식(八角圓堂式) 부도 5기는 모두 17~1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만연사(萬淵寺)의 괘불(掛佛)제작에 증명(證明)으로 참여한 지월당(智月堂, 팔각원당식)을 비롯하여 1688년에 세운 도암당(道庵堂, 석종형), 1766년에 세운 청직당(淸直堂,팔각원당식), 1773년에 세운 응서당(應西堂, 석종형), 그리고 학봉당(鶴峰堂, 팔각원당식)의 부도 들이다.

∎‘범능 스님 4주기 기념음악회’

작년 범능 스님 추모 음악회에서 인사말 하는 보원 스님

개천사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끝내고, ‘범능 스님 4주기 기념음악회’에 대해 보원 스님으로부터 직접 듣는다.

“개천사의 특별행사로는 ‘범능 정세현 기념음악회’가 있습니다.
범능 스님(예명 정세현, 본명 문성인)은 ‘광주출전가’ ‘꽃아 꽃아’ 등 많은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노래한 민중가수였고, 출가해서는 김용택, 도종환, 고규태 등 유명 시인의 시를 노래로 승화시킨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스님은 1961년 능주면 천덕리에서 태어나 화순초, 화순중을 졸업하였고, 스님이 되어서도 불지사(화순군 북면)에 머물며 ‘소아암어린이돕기 만연사음악회’를 기획 주관하는 등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 보살피는 데 앞장서셨습니다.
노래하는 수행자 범능 스님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2013년 갑자기 쓰러져 열반에 드셨습니다.
범능스님의 3주기였던 지난해 시월 개천사에서 ‘범능 정세현 기념음악회’를 개최하였는데 사백여 명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습니다.
오는 9월23일 개천사에서 범능 스님 4주기 기념음악회가 열립니다.
박문옥, 윤진철, 박강수 등 범능 스님과 가깝게 지낸 문화예술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음악회 준비를 하고 있고, 화순군에서도 예산을 지원하는 등 화순의 위대한 음악가를 기리는 행사에 여러 개인 단체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라면서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작지만 큰 사찰, 고즈넉하지만 울림이 있는 사찰.
기자에게는 개천사가 그렇게 느껴진다.

보원스님 프로필

1964년 충북 옥천 출생
옥천중, 옥천고,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순천 송광사 출가
송광사승가대학,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미국 University of the West 수학
2008년 개천사 주지 부임
2016년 화순연등축제준비위원장
2017년 화순불교사암연합회 회장 취임

개천사 비자나무 숲

부도 5기

개천사 해당화, 보원 스님이 직접 심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