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寂寞)한 식욕

박목월


모(메)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床에 올라
새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
또한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의
너그럽고 넉넉한
눈물이 갈구하는 쓸쓸한 食性.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을 하고
손과 주인이 겸상을 하고
산나물을 곁들여놓고
어수룩한 산기슭의 허술한 물방아처럼
슬금슬금 세상 얘기를 하며
먹는 음식.
그리고 마디가 굵은 사투리로
은은하게 서로 사랑하며 어여삐 여기며

그렇게 이웃끼리
이 세상을 건너고
저승을 갈 때,
보이소 아는 양반 앙인기요
보이소 웃마을 이생원 앙인기요
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
걸걸한 막걸리 잔을 나눌 때
절로 젓가락이 가는
쓸쓸한 음식.
----------

인생의 쓸쓸함을 형상화한 시 ‘적막한 식욕’
인생의 소박함 쓸쓸함, 허전함을 서로 나누어 먹는 음식 ‘모(메)밀묵’

녹두묵이 양반 음식이라면 메밀묵과 도토리묵은 서민의 음식이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밭을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묘사했다.

시인은 모밀묵을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 사돈을 대접하는 것”이라 읊으면서 걸걸한 막걸리에 메밀묵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역시 아직도 추운 겨울 밤 적막함을 뚫고, 골목길 누비며 ‘메밀묵, 찹쌀떡~ ’하고 외치던 소년의 목소리가 추억처럼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인간관계에서 흉허물 없이 어울리게 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음식이라 한다.

메밀묵은 소박하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고 인생과 세상사를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게 하며, 저승길 가는 인생의 마지막 주막에서 까지도 저절로 젓가락이 가게 하는 음식이라는 글귀에 절대 동감을 하게 되는 건 왜일까?



박목월(朴木月, 1916년~ 1978년)
시인, 교육자.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상남도 고성군(慶尙南道 固城郡) 출생, 경상북도 월성군 경주읍(慶尙北道 月城郡 慶州邑)에서 성장하였다. 한국 시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토속적 이미지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靑鹿派)시인 중 한사람
1940년,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으로 문단에 데뷔.
1959년 4월, 한양대학교 조교수가 되어 은퇴할 때까지 한양대학교에서 후학을 키우다가 1978년, 원효로 효동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고 동년 3월 24일, 지병인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