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년의추억'을 남겨 갈 서대표 부부

東면 언도리 ‘억년의 추억’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모내기가 끝난 들판에서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한가롭게 들리고 따가운 햇볕아래 옥수수가 졸면서 서 있는 밭을 지나자 길켠에서는 인디언 핑크빛, 자줏빛 접시꽃들이 기자에게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 조금 더 농로를 달리자 개울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벌목한 나무들을 잔뜩 쌓아놓은 목재소도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억년의 추억’을 몇 미터 남겨 놓았다고 멘트하는데 돌탑이 서 있는 공방이 보이면서 하얀 풍산개(나중에 알았는데 이름은 산이)가 컹컹 짖는다.

공방입구에 쌓인 나무와 풍산개 산이

그리고 보이는 ‘예린이네 우체통’...조금 더 멀리 ‘밥묵고, 차마시고, 체험하고’ 라고 쓰인 작품같은 ‘억년의 추억’ 간판(?)이 눈에 띈다.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 곳곳을 장식한 공룡목공예들이 기자를 맞이하고 주인은 안보여 일단 사진 촬영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안주인 김은심(金銀心)씨가 밖에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게 기자와 첫 인사를 마친 부인 은심씨의 안내로 35년 목공예 하면서 나무친구가 되어 살아 온 서덕호대표를, ‘억년의 추억’ 밖에 있는 공방 작업장에서 처음 만났다.

장발(長髮)의 반백머리를 덥수룩하게 어깨까지 늘어뜨린 서대표의 첫 인상은 아침 통화할 때의 건조하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딱딱함과는 사뭇 달리 목공예를 하는 예술가의 분위기가 물씬했고, 표정도 다정했다.

아름다운 이서 적벽 망향정(望鄕亭)이 세워져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서대표는 어린시절부터 미술에 관심과 재능이 있어 동생들의 그림과 공작(工作)숙제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다. 성인이 되면서 나무가 좋아 친구가 되었고 나무를 상대로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목공예 인생은 시작되었다.

▪'공룡'과 '서대표'의 만남

20대 초반부터 목공예를 해오던 서대표는 1989년도 대형교통사고로 인해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되자 작업도구들을 모두 처분해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부인 은심씨의 극진한 간호로 몸이 어느정도 나아지자 뭔가를 해야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우연히 ‘공룡’을 보자 서대표는 당시 일반인들은 전혀 관심이 없기에 작품을 만들면 오히려 희소가치(稀少價値) 때문에 좋아할 거 같다는 영감(靈感)을 받았다고.
이 순간의 선택이 ‘서대표와 공룡’과의 영원한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서대표가 공룡을 깍기 시작한 것은 1992년도 부터인데 그 시절만 해도 공룡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작업하는데 많은 애로를 겪었다고 전한다.

서대표의 작품에 사용되는 나무는 모두 국내산으로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구해오는데 입찰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또한 목공예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나무 특성에 따라 1차 2차작업을 해야하며 처음, 나무를 무조건 가져와 흙을 털어 뿌리나 원목작업을 한 후 나무의 형태를 보고 구상을 한다고. 구도작업이 끝나면 작업에 들어가는데 나무크기에 따라 변화가 심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서대표의 공룡작품은 많이 있지만 지금껏 해남공룡박물관 전시회 때 단 한 점만 판매하고 다른 모든 작품들은 서대표가 소장하고 있다.

▪'억년의 추억'과 '공룡'

‘억년의 추억’은 공룡 컨셉에 의해 탄생된 ‘전시관’이자 ‘전원식당’이다.
‘억년의 추억’이라는 상호도 공룡의 생존연대에서 유래되었는데 원래는 공룡 전시관 용도로 ‘억년의 추억’ 건물을 짓다가 고객들의 성화로 중간 설계변경하여 전원식당도 겸하게 된 것.

고객들이 이 평화로운 풍광에 음식도 먹으면서 전시물을 감상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서대표 부부에게 강권(强勸)하였단다.

서대표 자신이 손수 은심씨의 조력을 받으며 장장 4년 여 걸려 지은 ‘억년의 추억’은 작년 10월에 개업하였는데, 구석구석 서대표와 은심씨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깃들어 있다.
특히 단열(斷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억년의 추억’은 겨울엔 화목난로 하나 만으로 따뜻하고 여름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하는 날도 바깥은 땡볕 더위인데 ‘억년의 추억 내부’는 선선했다.
물론 공룡들에게 느껴지는 왠지 으스스한 한기(寒氣)도 있긴 했지만~..ㅋㅋ

‘억년의 추억’ 벽면에 기자의 눈길을 끈, 서대표가 자작한 글귀가 있는데 적어본다.
‘아~ 언제였던가
녀석들이 거닐던 어느 바닷가
지금은 화석되어
세월의 흔적만 남았는가.....‘

▪'예석공방'과 서대표 부부

예석공방은 서대표의 모든 목공예 작품이 만들어지는 산실(産室)이다.
일반 목공예부터 공룡까지...예석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억년의 추억’과 ‘전시실’에 각자의 위치를 찾아 전시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완성되기까지는 서대표의 목공예 인생 역사와 함께한 안주인 은심씨의 조력이 절대적인 힘이 되고 있으며, 은심씨는 서대표의 소중한 인생반려자이자 작품을 함께 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부부는 이렇게 ‘예석공방’과 ‘억년의 추억’을 윗방 아랫방처럼 오가면서 작품을 만들고 삶을 꾸려가고 있다.

1남1녀(서웅지, 서정연)를 둔 서대표 부부는 손녀 예린이의 탄생기념으로 백합처럼 순결하게 성장하라는 의미로 백합꽃을 형상화한 우체통을 선물로 제작해서 공방 입구에 세워두었다.

북면 노기리에서 태어나 평범한 가정주부를 꿈꾸었던 소박했던 처녀 은심씨.

지나온 세월 살아오면서 가족들의 생계보다는 목공예에 심취하는 남편 서대표를 만난것에 대해 은심씨는 원망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사고당한 서대표를 병간호하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목공예를 계속하며 어린 아이들 키우던 시절들이 자녀들이 모두 성장해버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상하는 은심씨는 이제는 근사한 전원까페 ‘억년의 추억’ 안주인으로서 “어느날 몇 명의 고객들이 쌍화차를 마시러 들어와 ‘이런 까페가 있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들었을 때 보람과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은심씨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서대표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힘이 닿는 날까지 다른 생각없이 공룡을 깎으면서 ‘억년의 추억’을 운영할 거라고. 그리고 시간나는대로 자신이 소속된 온누리봉사단에서 대금도 불고 한(韓)춤 퍼포먼스도 계속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어려웠던 시절은 한줄기 한숨과 함께 모두 스치듯 지나보내고, 가족들과 함께 부대끼며 고생하던 시기를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며 이제는 평온하고 보람된 나날을 살고있는 서대표 부부.

부부가 함께 포즈를 취하는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취재를 마치고 떠나오는 기자의 마음엔, 색다른 삶을 살고 있는 새로운 사람들의 만남에 대한 기쁨과 반가움으로 가득했고, 식당 2층 벽면에서 보았던 ‘참 좋은 인연입니다’ 글귀가 뇌리를 스쳐갔다.

서덕호대표: 010.3620.9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