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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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의 시상이 잘 드러 난 ‘나룻배와 행인’

자신을 나룻배에 비유하고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를 통하여 인내와 희생, 사랑에 대한 숭고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다른 시 ‘님의 침묵’에서도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한용운의 님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희망적인 ‘님’이다.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이 구절은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이 구절과 함께, 불교에서 강조하는 ‘인(忍)’의 경지를 의미하며 남에게 모욕과 박해를 받아도 화내지 않음이다.

이 작품은 참된 사랑의 본질인 희생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상 그 근원은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慈)와 비(悲), 그리고 인(忍)에 두고 있어서 ‘절실한 깊이’를 지닌다.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라고 묘사하며, 물만 건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는 님을 언제든 다시 오실거라 믿으며 전혀 불행하지 않은 행복한 기다림으로 낡아가는 지순한 나룻배는, 어쩌면 일제강점기 하에서 조국광복을 기다리는 한용운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한용운(韓龍雲, 俗名 韓貞玉 1879년 ~ 1944년)

충남 홍성 출생. 독립운동가. 시인
용운은 법명이며 법호는 만해(萬海),18세에 동학에 가담 했으며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음.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으로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대안점으로 불교사회개혁론을 주장.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고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였다. 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