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 송단마을

새해 들어 유난히 세찬 바람이 몰아치던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하늘은 고유의 프러시안 블루 빛 얼굴을 내밀며 춥지만 아름다운 1월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토요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우천으로 인해 미루어졌던, 읍에서 내비게이션 거리 38km 떨어진 북면 송단리 복조리마을 취재를 강행하기 위해, 황량한 가운데 나름 시골겨울 운치가 넘치는 길을 따라 나섰다.

최기현이장

*북면 송단 복조리 마을

20여 가구 40여명 주민들이 거주한다는 송단마을은 담양과 화순동복이 이어지는 대로상에서 백아산줄기의 차일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화순군 문화유산 56호로 지정된 송단마을은 정초가 되면 복조리를 방 귀퉁이에 걸어놓고 한해 복을 기원했던 풍습 덕에 한 때는 연간 10만개 정도의 복조리를 생산했던 국내 대표 복조리 마을이다.

500년 이상 복조리를 만들어 오는 전통을 가졌음에도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문명의 이기(利器)와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오면서 복조리 수요도 줄고 마을에서 복조리 만드는 일이 점점 사라지게 되자, 재작년부터 전통을 잇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로당 일거리 사업을 통해 복조리 전통문화유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60대 후반부터 70~80대 어르신들이 주로 만드는 송단마을 복조리는 현재 주문생산 하고 있으며, 마을공동사업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제작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송단마을’이 ‘복조리 마을’이 된 이유는 예전, 산 속에 복조리 재료인 조릿대나무, 즉 산죽(야생대나무, 시누대 일종)이 빼곡히 잘 자라고 있었다 한다.

조릿대는 무더기로 논과 산이 만나는 지점이나 산중턱 등에 무더기로 자생하는 특성이 있는데, 가을부터 겨울눈이 내리기 전이면 송단마을 사람들은 걸어서 약 20분 걸리는, 백아산 안골을 비롯 검덕골, 평주골 대판이 등지로 불리는 동네, 백아산(해발 810m) 북쪽 골짜기에서 조릿대를 채취, 튼실한 복조리를 만들었다고.

당시는 1년 가을농사가 끝나고 다음해 설 보름까지 농한기를 이용해 조릿대를 만들었는데 조릿대 수익이 1년 농사짓는 것과 거의 대등하여 가족생계는 물론 자녀들 교육비까지 모두 충당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송단마을 최기현 이장은 전한다.

산죽과 복조리

*복조리 만드는 과정

이제는 생활도구에서 벗어나 집이나 대문에 복을 비는 용도로 사용하게 된 복조리는 예전 쌀을 일던 복조리보다 실제 크기도 작아져 장식용품으로 제작되고 있다.
숙련된 사람이 아침 일찍 서두르면 하루 70개가량 제작한다고.

복조리라 해서 생각만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조리’는 대잎이 나지 않은 뻣뻣하지 않고 탄성 좋은 1년생 조릿대를 채취, 4등분 분할하여 2~3일간 말린 후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뺀 조릿대는 작업 전 4시간 물에 불리면, 뻣뻣한 기가 가시고 물을 먹어 부드러워진다. 이 조릿대를 손과 발을 사용하여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 끝을 홀쳐매는데, 한 개 만드는데 9분에서 10여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손가락이 아플 거 같다는 기자의 걱정에 복조리 만드느라 열중이신 김용님 어르신은 “복조리는 손가락이 아파도 장갑 끼고 못 만들어라우. 장갑을 끼면 미끄러지고 감각이 둔해서,,” 하신다.

조릿대, 이 한묶음으로 15개~20개 복조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복조리 만드는 과정, 손과 발을 사용하여 만든다.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

최이장은 언론매체를 활용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홍보결과 함평 해보면 청년회와 호주(오스트레일리아) 교포사회에서 행사나 설 선물로 주문을 요청해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수요자가 적다한다.

한편, 꼭 필요한 생활도구가 아니라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정당한 가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더라도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최이장은, 현재는 힘들지만 송단마을 주민들과 잘 협조하여 복조리 외에도 산죽차, 산죽술등 조릿대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개발과 학생들 체험학습장 등 마을기업육성방안을 연구· 검토 중이다.

"나도 복조리 만들줄 알아요!"복조리 만드는 최기현 이장

*아! 송단마을 ‘복조리’ 만드는 사람들

한국이 낳은 영문(英文)학자이며 수필가인 故이양하(李敭河) 선생은 자신의 집에서 담배 피우려 성냥을 그을 때면 우두커니 성냥개비를 들여다보며, 평생 영혼의 동반자이자 부인인 장영숙(張永淑)선생에게 “날더러 성냥을 만들라면 한가치도 못 만들 무재주인데, 땀 아니 흘리고 입에 밥 들어가니 감사한 일 아니겠소.” 했다한다.

평생을 소박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 예술, 친구들, 청춘과 삶을 사랑했던 학자가 남긴 그 한마디는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지금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격수양이 안된 기자의 일상에 소중하고 고마운 조언이 되곤 한다.

오늘 송단마을 복조리 만드시는 어르신들 까칠해진 손과 손놀림을 보면서, 문득 ‘무재주인데 땀 아니 흘리고 밥 들어가니 감사한 일 아닌가..’말이 떠올랐다.

머지않아 민속명절인 구정(舊正)과 음력 정월 대보름이 다가온다.
예전에는 복조리 만들어 팔아 자식들을 가르치고 살았는데, 이제는 복을 짓고 나눠주는 재미로 복조리 만든다는 송단마을 어르신들.

소중한 화순의 전통유산 명맥을 이어가고, 더 나아가 송단마을 어르신들의 ‘복 나누어주는 재미’에 우리지역민들도 동참하여, 실질적인 농가소득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새해를 맞이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복조리’ 선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다.

송단마을 복조리 만드는 어르신들

최기현 이장: 010.2795.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