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 나절

오세영

눈 올 듯 말 듯
햇빛 날 듯 말 듯
포장마차 집에서 막소주 한 잔, 꽃가게 가서 실없는
농담, 시계방 물끄러미 들여다보기, 돌아와서 눈물 찔끔,
그리고 다시 또 소주 한 잔,
행여 동백꽃 실려 올까,
불현 듯 달려간 간이역 플랫홈
남녘에서 오는 열차는 멎지 않고
오늘도 벌써 해 저무는데
우체부 올 시간은 지났고
아직도 누군가 올 듯 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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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 지난 지 며칠이 되었지만, 꾸어다가도 기어이 하고야 만다는 소한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눈 내리고 얼고 녹고, 또 눈 내리고 비에 젖고, 얼고,,,,겨울은 거기에서 무르익는다.

누군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했다.
간절한 것이 아니라도 기다림이 있는 인생은 행복하다.
서러움이 마음에 가득차도 그립고 기다려지는 마음은 그저 행복하다.
기다릴 대상이 있는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기다림이 있는 시간은 결코 지루함이 없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니..

오든 안 오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막연히 기다리는 그 시간들.
오늘이 아니면 언젠가 오겠지,,

그러다 보면
겨울 한 나절도 소리 없이 지나가겠지...
인생 한 나절도 소리 없이 지나가겠지....


오세영(吳世榮, 1942년~ ) 서울대 명예교수
1965년 박목월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1970년 처녀시집 <반란하는 빛>을 펴낸 이후 2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1980년대까지 사물의 모순 구조의 실체를 시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에 힘을 기울였고, 1990년대 이후의 시에서는 은일(隱逸)과 정관(靜觀)의 세계를 보여주는 불교 선(禪)과 연관이 있는 작품들을 많이 썼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대상, 시협상, 공초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불교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