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생 시 옆에 선 취산 선생.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금년 23회째를 맞이하는 화순예술인협회 회원전이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 지하 갤러리에서 8월 27일 (수)~8월 30일 (토)까지 열렸다. 관전에서 적어도 3번 이상 입선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로만 구성된 협회 26인이 서예와 그림 및 사진을 전시하였다. 그 중 서예가 취산 이만선 선생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취산 선생이 97년에 가입한 화순예술인협회는 순수하게 글과 그림을 사랑하고 관전에서 3번 이상 입선한 경험이 있는 화순인 서예가들 9명이 화순의 예술 발전을 위해 1991년 11월에 창립하였다. 2014년 8월 현재 배상금 회장을 포함한 26인이 회원으로 있다.

취산 선생은 1949년생으로 어릴 적부터 선친의 글과 그림을 보고 자라오면서 마음에 글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데 인생의 굴곡을 거쳐 불혹에서야 붓을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승은 호남의 서예대가인 학정 이돈흥 선생으로 일중서예대상을 기념하여 금년 4월 서울 백악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취산 선생은 고봉 선생의 시를 썼는데, 선생의 글씨체는 중국 왕탁 서법으로서 얼핏 보면 못 쓴 듯 하지만 강약이 뚜렷하고 간결하며 우아한 멋을 지닌 매력있는 글씨체이다. 취산이 쓴 고봉 선생의 시는 다음과 같다.

次天城韻 其一

壑蟠崖矗拱奇峯 怒瀑中豗傸吐風
惆悵羽人難邂逅 只憑孤鶴望㥙空

(서린 골짝 첩첩 벼랑에 기이한 봉우리 끼었고, 성낸 폭포 소리는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
섭섭하여라 신선은 만나지 못하고, 외로운 학을 따라 층공만 바라보네)

▶ 21세기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서예

그러나 어려움도 있다. 해년마다 열리는 화순예술인협회의 전시회도 화순군에서 문화육성자금과 문예진흥자금을 지원받아 겨우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라고 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사회질서와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외부로부터 불어온 변화의 바람으로 인해 서예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다른 예술에 비해 서예는 숭고하고 장엄한 인격미와 생명정감을 매우 간결하고 단조로운 형식속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최첨단 정보화와 몸 중심적 쾌락 추구의 시대를 맞아 서예가 쇠멸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대응책으로 서예문화보급과 후배양성에 대해서 취산 선생은 보수적이지만 분명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우선 서예문화보급에 대해서는, "화순의 경우 어린이들을 위해 <화순 적벽제>를 열어 서예문화를 보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나, 공공기관의 문화담당이 바뀌면서 <이수 적벽제>로 이전되어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공공기관과 국가적인 지원과 일관성이 절실하단 얘기다.

그리고 후진양성에 대해서는, "예술이란 모름지기 몸에 자연스럽게 배이는 것이지 가르친다고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고, 서예를 사랑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붓을 들게 되어 있다. 우선 서예라는 것은 심오한 학문적 연마와 뼈를 깎는 기량의 숙련이 요구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자질이 있고 글에 대한 열정을 지니지 않고서는 그 과정을 견딜 수가 없고, 또 그런 사람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제대로 된 서예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서단에 부는 변화의 바람

이런 생각에 대한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이들 변화는 주로 젊은 서예가들이 갖게 된 생각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인습대로 선생님의 제본이나 법첩만을 닮아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자기 개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 서예에는 절대 보편적인 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몇몇 권위 있는 대가들에 의해 서예가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최고의 권위를 지켜왔던 소위 법첩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여러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서예창작 상 참고서에 불과하다는 생각, 서예는 고도의 지성과 덕성을 지닌 인격자만이 창작하거나 또는 감상하기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간결하고 재미있는 일종의 추상적 유희성의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생각들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취산 선생의 생각도 서예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해 일응 타당한 견해이긴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서예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서예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취산 선생과 같은 이들 덕분에 한국 서단이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변화의 시대 속에서 서예인의 자강불식정신을 고취하고 진작할 뿐만 아니라 서예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부단히 탐색하고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릇 뛰어난 작품일수록 법고성적인 전통요소와 창신성적인 시대요소가 많이 겸유될수록 역사속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취산 선생에게 서예란...

자택에도 있는 작품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취산 선생의 인생에서 서예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던히 긴 것”이었다며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이 자연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폭풍 속에서 취산 선생같이 자연과 더불어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동양적 세계화가 펼쳐지길 바래본다.
<취산 이만선 선생 연락처 010-6777-2673>